열악한 사진계를 위해 발벗고 나선 국내 사진미술관 1호 한미사진미술관 송영숙 관장. 지난해 말 2000만 원의 지원금을 주는 한미사진 예술상을 제정한 송 관장은 올해에는 사진작가들을 위한 작업실 지원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이종승 기자
지난해 말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 송년의 밤에 초대된 미술인들은 송영숙(58) 관장이 제정한 제1회 한미사진예술상 경과보고를 들으며 상의 공정성을 위해 송 관장이 기울인 노력에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송 관장은 지난 2년간 사진과 관련한 기사를 모두 스크랩해 1000쪽에 달하는 책으로 묶어 심사위원들에게 보냈고 무기명 투표에 따라 수상자를 선정했다. 상금 2000만 원을 줬다.
수상자 역시 화제가 됐다. 다름 아닌 영화 ‘거짓말’(장선우 감독)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사진작가 이상현(51) 씨였다. 사진작가의 외도 시비와 영화의 외설 시비로 곤욕을 치렀던 이 씨가 공백을 깨고 지난 2년간 열었던 단 두 번의 개인전으로 상을 받은 것.
한동안 국내 예술계는 사진을 예술로 봐주지 않았다. 송 관장이 열악한 사진계를 위해 일하겠다며 문화관광부로부터 2002년 ‘국내 1호 사진미술관’이란 허가를 받을 때만 해도 주변에선 “차라리 카메라를 전시하는 사진박물관을 열라”고 만류했다. 미술관 운영이란 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기 십상인 데다 특히 비주류 장르로 알려진 사진계는 도와주는 곳이 워낙 없어 힘들 것이라는 조언들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그가 뜻을 밀고 나간 것은 자신도 한때 사진작가를 꿈꾸었던 예술가 기질 때문. 숙명여대 재학 시절 오빠를 따라 카메라를 잡기 시작해 30년 넘게 사진을 놓지 않았던 그는 자수성가한 남편(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을 뒷바라지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바쁜 생활 속에서 틈틈이 사진을 찍었다. 특히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일상의 다양한 이미지를 수채화처럼 만드는 독창적인 기법으로 10여 차례 개인전과 그룹전에도 초청받았다. 1998년에는 국내 대표 화랑인 갤러리 현대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중년에 접어들어 작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송 관장은 마침 창립 30주년을 맞아 기업의 사회 환원에 관심을 갖고 있던 남편과 의기투합해 미술관을 열어 국내 사진작가들을 지원하기로 했다. 일본 영국 등의 사진박물관을 돌며 운영 방식과 작가 지원책 등을 꼼꼼히 배우는 한편 국내외 사진 작품들도 열심히 수집했다.
한미약품 본사 건물 10층을 빌려 180여 평의 전시실과 수장고를 갖춘 미술관은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사진 작품과 전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추고 있다. 바닥과 벽면도 빛 반사 등을 고려해 꾸몄고 빛에 약한 사진을 보호하기 위해 특수 조명도 마련했다.
송 관장은 예술상 마련에 이어 올해 본격적인 작가 지원에 나선다.
“작가들의 열악한 작업 환경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경북 안동시 일직면의 폐교를 보수해 스튜디오로 제공할 예정입니다. 생활에 필요한 부대시설이 다 되어 있고 암실도 마련되어 있어 카메라만 들고 가면 됩니다. 한 번에 4명의 작가가 일할 정도의 규모입니다. 강의실도 있어 가까운 영남권 일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진 교육 및 워크숍 공간으로도 쓰였으면 해요.”
‘2004 서울 세계박물관대회’(ICOM·The 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 문화탐방 프로그램에도 선정돼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미술관으로 인정받은 한미사진미술관은 올해에는 이형록 정범태 김근원 현일영 등 한국의 대표 원로작가 사진전을 열 계획이다. 한국 사진의 초석이 된 이들의 전시를 통해 내면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 사진 철학을 공유하고 싶다는 것이 송 관장의 포부다. 관람료는 없다. 02-418-1315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