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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의 ‘제3지대’도로 위의 가수들

입력 | 2006-01-25 03:08:00


《24일 낮 12시 경기 하남 만남의 광장. “트로트 메들리 테이프 있어요?”“요새 뭐가 제일 잘나가요?”“노골쏭 있어요?”… 평일 낮 시간임에도 음반 가게 앞은 시끌벅적하다. 최근 이곳에서 가장 잘 팔리는 테이프는 옴니버스 앨범 ‘트로트 넘버 원’. 판매원 한애경 씨는 “하루 평균 100개 이상의 테이프가 팔리고 휴일,명절 대목에는 200개도 넘게 팔려 없어서 못 팔 정도”라며 “고속도로 휴게소 테이프를 사기 위해 먼 길 달려오는 단골소님도 많다”고 말했다.》

○ 김란영 메들리 500만 장 가볍게 돌파

설날 가족끼리 귀성하는 차 안에서 트로트 음악이 울리면 10대들은 불평한다. “아유∼ 이런 노래를 요새 누가 들어?” 그러나 알게 모르게 입 소문으로 팔리는 트로트 음반은 여느 인기 가수의 음반 판매량을 가볍게 웃돈다. 전국 140여 개 휴게소에서 들을 수 있는 대중음악의 제3지대,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 뽕짝 음반이다.

고속도로 휴게소 음반은 1980년대 후반 가수 주현미가 발표한 ‘쌍쌍파티’ 음반의 인기 이후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무명 가수들이 기성 가수들의 히트곡을 부른 ‘트로트 메들리’ 형태로 존재했다.

‘고향 가는 길’이라는 귀성길 전문 트로트 메들리 음반 등 100만 장 이상 팔린 음반만 10장을 갖고 있다는 가수 진성(46)을 비롯해 1995년 ‘안방 메들리’로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는 신웅(48), “고속도로에서도 분위기를 낼 수 있다”며 발라드풍의 트로트 메들리 음반 ‘카페 드라이브 뮤직’ 시리즈 20장으로 50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김란영 등 스타도 여럿이다.

현재는 아예 독집 음반을 발표해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도 많다. ‘사랑의 밧줄’의 김용임, ‘천년을 빌려준다면’의 박진성, ‘노골쏭’이라는 성인 가요를 부른 정희라 등이 대표 가수로 꼽힌다.

최근 ‘태클을 걸지마’라는 신곡을 발표한 가수 진성은 90여 장의 음반을 발표한 데뷔 15년차 베테랑 가수. 그는 “고속도로 음반은 여러 가수가 부른 인기곡을 한꺼번에 들을 수 있고 음악 자체가 신나고 즐거워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 싼 가격-최신곡모음 매력 갈수록 불티

고속도로 음반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음반 판매량에서는 기성 가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속도로 음반 전문 유통사인 하나미디어의 박재영(47) 사장은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최근 발매된 10여 장의 음반 모두 10만 장 이상 판매됐다”고 말했다.

이들의 음악은 △MP3파일이나 디지털 음원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음반으로만 존재하고 △최근 인기 있는 가수들의 음악을 한 앨범에서 메들리로 들을 수 있으며 △비교적 싼 가격(두 개 기준으로 테이프 6000원, CD 1만 원)에 음반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 등으로 40∼50대 중장년 소비층에 어필하고 있다. 고속버스 운전사 강원철(41) 씨는 “기분이 우울할 때나 졸음이 몰려올 때 고속도로 음반을 들으면 신이 난다”고 말했다.

이들의 음반 제작비는 얼마일까? 현재까지 40장의 음반을 발표한 가수 신웅은 “과거 ‘저작권’의 개념이 없었을 때만 해도 100만∼200만 원의 저렴한 제작비로 음반을 냈지만 지금은 저작권료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대략 1000만 원부터 1억 원까지 든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장윤정, 박상철, ‘LPG’ 등 인기 가수들의 오리지널 곡을 묶은 옴니버스 앨범이나 7080세대를 겨냥한 트로트 묶음 앨범, DJ들의 트로트 리믹스 음반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고속도로 음반 전문 제작사인 새샘음반의 문병초(54) 사장은 “저작권 개념이 강해져 과거 무명 가수들이 만들어냈던 불법 ‘짬뽕 음반’은 없어진 상태”라며 “합법적으로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제작된 옴니버스 음반이 대세”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지루한 귀성-귀경길 어떤 음악 좋을까▼

“지금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은 주차장을 방불케 합니다….” 한복 곱게 차려입고 운전대를 잡았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기쁜 마음은 온데간데없다. 도로는 밀리고 아이들은 징징대고…. 귀성길이 곧 ‘지옥길’로 변한다. 과연 어떤 음악을 들어야 귀성, 귀경길이 신날까? ♬ 페달을 밟으며… 리사 오노, 모그

갓 씻은 양상추 같은 음악으로 시작해야 한다. 너무 강렬하고 자극적이면 금방 ‘체하기’ 때문. 듣고만 있어도 날아갈 듯한 일본 출신의 여성 보사노바 가수 리사 오노의 2001년 작 ‘유 아 더 선샤인 오브 마이 라이프’나 ‘프리티 월드’, 국내 베이스 연주자인 모그의 최신 앨범 ‘저널’ 등은 ‘아사삭’ 소리를 내는 오이 같다.

♬ 나른한 점심… 이한철, 사이먼 웹

식사 후 으레 찾아오는 ‘식곤증’. 빠른 댄스 음악도 좋지만 너무 빠르면 오히려 리듬에 묻혀 졸기 십상. 나른한 시간에는 자극 없는 포크 록이나 애시드 재즈가 적당하다. 가수 이한철의 ‘폴 인 러브’나 노르웨이 출신의 애시드 재즈 밴드 ‘디사운드’의 ‘두 아이 해브 어 리즌’ 등의 모던 사운드가 좋다. 또 영국 남성 그룹 ‘블루’ 출신인 사이먼 웹의 팝 발라드 ‘레이 유어 핸즈’도 강추.

♬ 아이들이 징징댈 때… 엔야, 푸딩

아이들이 징징댈 때, 무조건 음악을 끄고 소리 지르지 말길. 심호흡 한 번 크게 한 후 ‘자양강장제’같이 안정을 주는 음악을 듣는 건 어떨까? 아일랜드 출신의 뉴에이지 아티스트 엔야의 최근 음반 ‘아마란틴’이나 국내 5인조 팝 재즈 밴드 ‘푸딩’의 음악은 진정된 마음을 다시 한번 ‘업’시켜 주는 데 제격이다.

♬ 마지막 고비에서… 크리스 브라운

어스름 깔린 저녁, 목적지에 다다를 즈음 마지막 정체를 맞는다면 차 안을 ‘무드’ 있게 바꿔 보자. 최근 빌보드 싱글 차트 5주 연속 1위를 차지한 흑인 가수 크리스 브라운의 ‘런 잇’은 흥겨우면서도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