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이후 북한의 경제개혁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김 위원장은 2001년 상하이(上海)를 방문해 ‘천지개벽’을 예찬했고 이듬해 7·1경제개혁조치가 발표됐다. 이후 수년간 북한에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변화의 많은 부분은 베일에 가려 있다. 북한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하고 2001년 북한을 탈출한 본보 주성하 기자가 북한의 변화와 그 변화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군상(群像)을 추적했다.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지난해 8월. 평북 신의주시 강명호 씨의 집에 전보 한 통이 날아들었다. 군부대 소속 외화벌이 사업소 잠수부인 아들이 강원도 앞바다에서 조업하던 중 사고로 숨졌다는 전보였다. 강 씨는 바로 원산으로 달려가 장례를 치른 뒤 사업소 측과 협상을 시작했다.
협상 끝에 강 씨는 북한 돈 80만 원(약 270달러)을 받아 냈다. 아들이 한 해에 30만 원 이상을 벌긴 했지만 근로자 평균 월급이 2000∼3000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많은 액수다. 몇 년 전만 해도 보상이라는 건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보상 요구는 당연한 일이 됐다.
교통사고도 마찬가지. 평양시에 사는 홍성일 씨는 지난해 한 기업소 차량에 치여 중상을 입었다. 홍 씨는 운전사와 기업소를 상대로 흥정 끝에 30만 원(약 100달러)을 받아 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운전사가 사망 사고를 내더라도 기껏 면허를 박탈당하거나 경중에 따라 감옥에 가는 것으로 사고 처리가 끝났다. 보험회사도 없으니 유족들은 보상받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더구나 권력기관의 차에 치이면 피해자 부주의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이젠 그렇지 않다. 유족과 운전사가 서로 합의만 하면 없었던 일로 조용히 끝난다. 사망 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합의금은 대략 80만 원 선.
이런 변화들은 돈에 대한 북한 주민의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은 요즘 ‘돈만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돈이면 사형수도 꺼낼 수 있고, 여행도 맘대로 다닐 수 있고, 직장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최근 통행증을 발급받아 중국에 나온 김영희 씨는 “통행증을 발급하는 인민위원회 2과에 돈만 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면서 “중국행 도강(渡江)증은 30만 원 이상, 일반 통행증은 3000원, 평양 통행증은 8000원이면 해결된다”고 말했다.
평북 신의주에서 약품을 받아다 함남 함흥에 내다 파는 한성옥 씨는 현재 2·8비날론연합기업소 노동자다. 하지만 지난해 그는 단 하루도 직장에 나가지 않았다. 생활총화, 학습 등의 조직생활에도 참가하지 않는다.
기업소에 매달 1만5000원을 바치는 대신 출근하는 것으로 인정받는다. 따라서 무직자라고 처벌받을 일도 없다. 북한에는 이런 사람이 부지기수다.
김영희 씨는 “이제 북한에서는 장군님 욕하다 잡히는 거 빼고는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없다”며 “누구나 돈을 벌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주민들 ‘자본주의형 인간’으로 바뀌는 중▼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
7·1조치를 통해 국가가 개인의 경제적 생존을 더는 책임지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한 지금, 주민들은 이제 필사적으로 돈벌이에 나설 수밖에 없다. 계획경제에서 개인이 돈을 버는 길은 시장경제 활동 외에는 없다. 그런데 시장화의 진전은 여러 분야에 파급효과를 몰고 온다. 가장 큰 것은 사람도 변화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의식세계가 바뀐다는 것이다. 사회주의형 인간에서 점차 자본주의형 인간으로 탈바꿈해간다. 집단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하고 이념보다는 경제적 합리성을 선호하게 된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경제적 합리성과 배금주의의 경계가 다소 모호하지만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관한 한 북한 역시 서서히 이기주의와 배금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