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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매’는 매서웠다

입력 | 2006-01-25 03:11:00


영업사원 김승범(24) 씨는 2004년 10월 차량용 내비게이션 ‘미오 138’을 구입했다. 대만 제조업체 ‘마이텍’의 제품으로 값싸고 성능도 좋아 보였다.

하지만 기대는 곧바로 실망으로 바뀌었다. 내비게이션이 비정상적으로 길을 안내했기 때문이다.

직진하면 찾을 수 있는 길을 좁은 골목으로 우회하도록 안내하는가 하면 겨우 빠져나온 고속도로에 다시 들어가도록 안내하기도 했다. 한번은 호수 주위를 뱅뱅 돌면서 목적지를 계속 지나치게 만들었다.

결국 지난해 말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 카페에 개설돼 있던 ‘미오 사용자 모임’을 찾았다.

○소비자의 힘 보여 준 누리꾼들

미오 사용자 모임은 지난해 10월 만들어졌다. 당초 이 카페는 같은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동호회’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회원들이 점차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일부 제품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란 사실이 입증되면서 압력단체로 변했다.

회원은 빠르게 불어났다. 카페를 개설한 지 한 달도 안 된 10월 23일 1000명, 12월 2일 2000명을 돌파했고, 이달 24일 오후 4시 현재 6952명까지 늘어났다. 최근에는 회원 2만3000여 명의 다음 카페 ‘미오138 내비게이션 모임’과도 연대해 세를 불렸다.

이들은 제품의 하자를 고쳐 달라는 서명 운동을 벌였다. 지난해 11월에는 이 제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LG상사에 리콜을 요구했다. 이미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대책을 검토 중이던 LG상사는 이들의 항의를 받고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LG상사 미오 담당 김호규 과장은 “회사 자체적으로 테스트를 했더라면 수개월이 걸렸을 작업이었는데, 수만 명의 소비자가 이를 대신해 줘 짧은 시간에 문제점을 파악해 준 셈이 됐다”고 말했다.

○인터넷 시대 소비자를 속일 수 없다

LG상사는 오류를 일으키는 지도프로그램을 새 것으로 교체해 주기로 하고 지난해 12월 마이텍에 이러한 방침을 전달했다.

마이텍에는 비상이 걸렸다. 담당 부사장과 마케팅 기술지원 이사 등 임원진이 한국에 와서 문제를 파악한 뒤 “2월까지 미오 제품의 지도를 모두 교체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한국 시장을 놓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이텍은 “한국의 차량 등록 대수가 1500만 대인데 내비게이션을 장착한 차량은 5%도 안 된다”면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장에서 소비자들을 홀대했다가 받을 손실이 더 크다고 판단해 누리꾼들의 요구를 들어주게 됐다”고 설명했다.

미오 사용자 모임 회원들은 현재 마이텍의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철저한 사후 관리와 애프터서비스를 추가로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업계에서는 “기업이 제품 정보를 독점하던 시절 같았으면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라며 “인터넷을 통해 조직화하고 고급 정보를 공유하는 소비자들을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이 상징적으로 보여 줬다”고 평가한다.

마이텍이 생산하고 LG상사가 수입 판매하는 내비게이션 ‘미오’는 지난해 15만 대가 팔렸으며 팅크웨어의 ‘아이나비’와 휴대용 내비게이션 시장점유율 1, 2위를 다투고 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미오’리콜까지

▽2005년 10월 12일=카페 ‘미오 268 유저들의 모임’(cafe.naver.com/mymio) 개설 ▽10월 23일=회원 1000명 돌파 ▽12월 2일=회원 2000명 돌파 ▽12월 7일=LG 상사, 카페 회원과 면담 후 제품 하자 인정 ▽12월 31일=대만 마이텍 임원진, 방한 카페 회원들과 면담. 회원들 요구대로 제품 리콜하기로 결정

자료: LG상사, 네이버 카페 ‘미오 사용자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