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스에게 ‘너 문 잠그는 것 싫으냐?’고 하였더니, 딥스는 잔뜩 찡그리며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딥스는 싫어, 닫힌 문 싫어. 잠긴 문과 닫힌 문, 딥스 싫어 벽”이라고 하였다. 분명히 문을 닫는 것이나 잠그는 것과 연관된 불행한 경험을 했음이 틀림없었다. 나는 딥스가 표현하는 느낌을 인식할 수 있었다. ―본문 중에서》
딥스는 다섯 살짜리 남자 아이다. 제복을 입은 도우미가 있을 정도로 부유한 집에서 살며 교양 있고 학식 높은 엄마 아빠와 함께 산다. 매일 아침 엄마 손에 이끌려 유치원에 오는데 보통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다른 아이들은 겉옷을 벗어 걸기가 무섭게 함께 어울려 재미나게 노는데 딥스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벽을 향해 몇 분이나 그대로 서 있다가 수업이 시작될 때쯤 선생님과 아이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은 모습이 잘 보이는 위치에 있는 어느 의자 밑에 쭈그려 앉아 그들을 물끄러미 응시한다. 유치원에 다니곤 있지만 선생님과 친구들과도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어울려 노는 일이 전혀 없다. 자기 자신 속에 자기를 가둬 놓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곁에 있는 또래들이 딥스를 그냥 둘 리가 없다. 건드리기도 하고 놀려대기도 하며 말을 걸어 보기도 한다. 딥스의 반응은 무척 거칠다. 야수처럼 대응한다. 할퀴고 소리 지르며 엄청난 감정적 발작을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은 딥스를 그냥 무시한다.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간섭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
그렇게 2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다. 딥스는 여전히 이상한 아이로 남아 있었지만 교사들 가운데 누구도 딥스를 정신지체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육 활동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으면서도 딥스는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교사들은 딥스를 정신치료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한다. 머리는 지극히 정상이면서 어린 시절에 겪은 감당하기 어려운 어떤 상처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을 남에게 활짝 열어젖히지 못하는 가엾은 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놀이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임상심리학자인 버지니아 M 액슬린 여사와 딥스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책은 딥스에 대한 액슬린 여사의 놀이치료 기록을 소설처럼 엮어 놓은 것이다. 이 책은 출판된 이래 교육심리학이나 유아교육 그리고 상담 및 정신치료 분야에서 엄청난 갈채를 받아 오고 있다. 그 갈채의 이유는 무엇일까?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에게도 깊은 정신적 상처가 있을 수 있다는 것과 그런 상처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아이도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처럼 잘 보여 준 예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체면과 선입관에 매몰돼 아이의 고통의 진실을 외면하게 되는 부모의 어리석음을 이처럼 생생하게 보여 준 책도 드물다. 아울러 이 책은 자신의 내면에 감옥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자신을 가둔 마음의 상처를 놀이치료로 서서히 아물게 하는 상담치료의 흥미진진한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이 책은 놀이치료를 다룬 전문서적이지만 결코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 소설처럼 쓰였기 때문이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 또는 교육자들은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대단히 유익한 책이다. 모든 학부모께 일독을 권한다.
문용린 서울대 교수 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