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가 서울에 두 개의 궁궐을 지은 것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궁궐이 하나뿐이면 화재나 변란이 일어났을 때 왕이 갈 곳이 없다. 우선순위에서 앞서는 제1궁궐을 ‘법궁(法宮)’, 제2궁궐을 ‘이궁(離宮)’으로 불렀다. 조선 초기의 법궁은 경복궁이었고 이궁은 창덕궁이었다. 임진왜란으로 두 궁궐이 소실되자 광해군은 경복궁은 내버려 두고 창덕궁만 중건하는 한편 인왕산 아래 새로 인경궁과 경덕궁을 지었다. 창덕궁은 법궁으로 지위가 올라갔다.
▷이후 궁궐들은 여러 번 정치적 회오리에 휘말린다. 광해군을 내쫓고 즉위한 인조는 광해군이 세운 인경궁을 헐어 내고 그 자재를 창덕궁 보수에 사용했다. 대원군은 왕실의 권위를 위해 국가재정을 고갈시켜 가며 경복궁을 중건했다. 일제가 경복궁 안에 총독부 건물을 짓고 광화문을 다른 자리로 옮긴 것도 조선왕조의 맥을 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문화재청이 광화문의 해체와 복원을 비롯한 ‘서울 역사도시 조성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광화문을 원위치로 옮기거나 서울 성곽을 복원하는 계획은 여러 번 알려졌던 내용이라 새로울 게 없다. 북악산 개방 계획에서 숙정문을 개방한다는 것도 지난해 9월 발표됐던 것이다. 광화문 앞에 광장을 조성하는 게 새로운 소식이지만 서울시와는 상세한 협의가 없었다고 한다. 예산 문제에 대해 ‘정확한 액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문화재청의 답변 또한 어설프기 짝이 없다.
▷이처럼 덜 익은 사안을 요란스레 발표부터 하니까 야당 소속인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에 대적하기 위한 ‘정치적 작품’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단계별로 이뤄지는 북악산의 첫 개방 날짜가 지방선거(5월) 한 달 전이고, 전면 개방이 되는 날짜가 대선을 앞둔 내년 10월인 점도 개운하지 않다. 서울의 역사를 복원하자는 걸 탓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선거일정에 맞추듯 서두르다가는 뜻 깊은 역사(役事)를 그르칠 위험이 크다. 영욕이 교차됐던 경복궁과 광화문을 정권을 위해 동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