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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신년회견]국민 반발에 ‘增稅카드’ 일단 거둬들여

입력 | 2006-01-26 03:00:00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진행된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모두연설을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중요 현안에 관한 질문에 답변하면서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지 않는 등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양극화-부동산 대책]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5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할 수 없다”며 “당장은 증세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반발 여론을 감안해 일단 ‘증세 카드’를 접은 것이지 재원 조달에 문제가 있는 한 증세 논쟁은 언제든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전문가들은 노 대통령이 재정과 복지지출 규모에 대해 책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힌 데 대해선 대체로 공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증세 논쟁으로 끌고 가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 데 대해서는 반론이 많다.

한양대 나성린(羅城麟·경제학) 교수는 “18일 신년연설에서 재원 조달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해결 방안을 공론에 부쳤기 때문에 증세 논쟁이 붙은 건 당연했다”며 “이를 정략적이라며 오히려 감세 쪽으로 몰고 가는 것은 초점을 흐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는 노 대통령이 밝힌 대로 △세출 구조조정 △예산 효율화 △비과세 및 감면제도 개편 △고소득자와 탈루소득 세원(稅源) 노출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이목희(李穆熙) 의원은 “정부의 경비 절감과 세출 구조조정 등 제 살을 깎는 노력이 선행돼야 국민이 세금 인상을 납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증세 논쟁이 다시 불거질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노 대통령이 “국민이 동의하지 않고 있는 만큼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 것은 ‘공감대가 형성되면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기 전이라도 2월 ‘중장기 조세개혁방안’과 3월 ‘중장기 재정운용계획’이 나오면 증세 논쟁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재정 수요에 비해 세수가 어느 정도 부족한지 드러나기 때문.

한편 2월경 나올 추가 부동산대책의 틀은 “부동산정책을 무력화하기 위해 집요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대통령의 말에 함축돼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부는 8·31 부동산 종합대책의 입법화 후에도 집값을 흔드는 재건축 시장에 대한 추가 조치를 비롯해 택지 공급 확대, 분양가 인하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공공택지 내 아파트 분양가를 더 낮추기 위해 택지 값 산정 기준 강화 △정부가 전셋집을 빌려 이를 임대하는 등의 전월세 대책 등도 검토되고 있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전시작전권 환수]자주국방 의지 강조… 국방부 “최소 수년 걸릴것”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가급적 올해 안에’ 매듭짓도록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발언한 배경은 무엇일까.

일단 국방부는 지난해 10월 제37차 한미안보협력회의(SCM)에서 전시작전권 환수 협의를 적절히 가속화한다는 한미 양국의 합의를 재확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노 대통령이 연내에 매듭짓겠다고 한 것은 구체적인 환수 시기나 방법이 아니라 그간 한미 군 당국이 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서 논의해 온 ‘협의 절차’라는 것.

국방부 관계자는 “SPI와 실무협의에서 도출된, 전시작전권 환수를 포함한 미래 한미동맹 비전에 대한 연구결과를 10월 열릴 제38차 SCM에 보고하기로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주한미군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국방을 위해선 전시작전권을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는 의지를 강조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한미 양국이 합의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주한미군이 수시로 다른 분쟁지역에 투입되고 이 때문에 한국군의 안보 책임이 가중될 경우 전시작전권 환수의 필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군의 능력과 여건, 남북관계와 대미관계 등 다양한 변수를 감안할 때 현재로선 전시작전권의 환수 시기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게 다수 전문가의 지적이다.

국방부는 과거 평시작전권 환수에 4년이 걸린 점을 감안할 때 전시작전권 환수 협의도 최소 수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초 연설 원고에는 ‘올해 안에 매듭짓겠다’고 못 박았지만 노 대통령이 실제 발언에서 “올해 안에 완결되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문제를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수위를 낮춘 것도 이런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위폐-한미관계]“美 일부의견 동의못해”… 분명한 인식차 드러내

노무현 대통령은 25일 “북한의 붕괴를 바라는 듯한 미국 내 일부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한미 간 이견 가능성을 언급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을 뜯어보면 북핵문제 해결에 관해 전반적으로는 한미 간 이견이 없다는 점을 밝히면서도 한편으로는 북한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와 압박, 붕괴 등의 방법을 동원하는 데는 찬성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가 읽힌다.

이 발언은 미국 내 보수강경파 세력인 네오콘을 겨냥했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지만 미 행정부의 기조에 대해서도 비판적 의견을 밝힌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노 대통령의 비슷한 상황 인식은 북한의 위조지폐 제조 및 유통 의혹에 대해서도 드러난다. 노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 정권을 압박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지 등에 대해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아가 북한이 위조지폐와 관련해 어떤 불법행위를 했는지도 면밀히 따져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과 며칠 전 한국을 다녀간 미국 재무부 금융범죄단속반이 한국 정부에 ‘북한 정부 주도의 불법활동’을 명시적으로 밝힌 직후라는 점에서 분명한 인식차가 느껴진다.

유호열(柳浩烈)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국내문제도 아닌 외교문제에 대해 그렇게 직설적으로 속내를 밝혀 버리면 나중에 주워 담기 힘든 상황이 오거나 더 큰 양보를 해야 하는 처지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정치현안]탈당-통합론 일축… 全大 앞두고 분란차단 포석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탈당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론 등 정치 현안에 대한 답변은 자신의 기존 입장과 별 차이가 없었다.

탈당 문제에 대해선 “과거형”이라고 일축했고, 통합론에 대해선 “열린우리당 창당정신은 호남에서도 정당 간 경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는 탈당론과 통합론이 2·18전당대회를 앞두고 불필요하게 당내 분란의 ‘불씨’가 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여당 내에서 노 대통령 탈당에 대한 반대 여론이 우세한 상황에서 이날 회견으로 탈당 논란은 잠복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민주당과의 통합론을 둘러싼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는 관측이 많다. 통합을 지지하는 여당 내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발 기류까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柳時敏) 의원 입각 파동에 대해 노 대통령은 “어느 나라 대통령이 각료를 임명하는데 당에 가서 표결과 토론을 부치나. 오히려 바로 임명하지 못하고 좀 의논해 보자며 임명을 유보해 소리가 크게 터져 나온 게 나의 실수였다”고 정리했다. 유 의원 입각에 대한 당내 반발을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

지난해 정국을 달구었던 대연정(大聯政) 제안에 대해선 아쉬움을 피력했다. “대연정 구상의 얼개는 2002년부터 여러 번 얘기해 왔는데 정계 학계 언론계가 주목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이 이날 밝힌 ‘국가적 과제 해결을 위한 정치모델론’은 향후 정계개편 상황 등에 대비한 또 다른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