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브로커 윤상림(54·구속기소·사진) 씨가 2003년 대통령사정비서관 사무실에 찾아갔던 것으로 밝혀졌다. 청와대는 이 직후 윤 씨의 비리 첩보를 입수해 검찰에 넘겼으며 윤 씨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사정비서관을 지낸 양인석(梁仁錫) 변호사는 25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2003년 말 사정비서관 재직 당시 윤 씨가 불쑥 사무실로 찾아와 ‘어느 경찰관이 부당하게 징계를 당했는데 구제해 달라’고 부탁했다”며 “윤 씨의 행동이 수상해 뒷조사를 벌여 3건의 첩보를 대검찰청에 넘겨줬다”고 밝혔다.
3건의 첩보에는 윤 씨가 H건설로부터 수억 원을 뜯어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으며 2004년 1월 비리첩보를 넘겨받은 대검은 이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배당해 윤 씨에 대한 내사가 시작됐다는 것.
당시 사정비서관 등 민정수석비서관 휘하 직원의 사무실은 청와대 경내가 아닌 외교통상부 청사 안에 있었고 윤 씨는 외부인 방문록에 인적사항을 적고 손쉽게 청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양 변호사는 윤 씨가 자신을 찾아온 데 대해 “누구의 소개도 없었고, 윤 씨는 명함도 주지 않은 채 ‘호텔 사장’이라고만 했다”며 “나를 찾아온 것 자체가 ‘영업전략’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다녀간 걸 갖고 생색을 내면서 브로커 노릇을 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 측은 “민정수석실은 윤 씨가 구속된 뒤인 지난해 12월 초에도 한국마사회장을 지낸 윤모 씨와의 돈거래 등 4건의 첩보를 검찰에 추가로 넘겨줬다”고 밝혔다.
검찰은 청와대 측으로부터 최초의 첩보를 넘겨받은 지 1년 10개월이 지나서야 윤 씨를 구속한 데 대해 “2004년 4월 법조비리를 수사할 때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서 특수3부로 사건이 넘어갔다가 관련자가 진술을 거부해 수사가 진척되지 못했다”며 “올해 2월 재조사에 착수해 증거를 모으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나라당 이계진(李季振) 대변인은 윤 씨의 사정비서관실 방문 사실에 대해 “청와대 본관이든 별관이든 대통령 보좌진 사무실이 있는 곳이 청와대가 아니면 무엇이냐”며 “윤 씨가 청와대를 드나든 게 사실로 밝혀진 만큼 ‘윤상림 게이트’는 ‘청와대 게이트’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靑이어 국회사무처-軍골프장까지“尹씨 출입기록 못내준다”
청와대에 이어 국방부 산하 군 골프장과 국회 사무처까지 구속 기소된 브로커 윤상림 씨의 출입기록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국회 사무처는 한나라당 주호영(朱豪英) 의원이 23일 ‘2003년 4월 이후 윤 씨의 국회 의원회관 방문 일시 및 호수’에 대한 자료제출 요구를 신청한 지 하루 만인 24일 이를 거부한 것으로 25일 밝혀졌다.
국회 사무처는 주호영 의원에게 제출한 답변서에서 “청구인의 방문기록 조회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의해 공개할 수 없다”고 거부 이유를 밝혔다. 이 법률 제9조는 비공개대상 정보에 대해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로 명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주호영 의원 측은 “사무처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이유는 윤 씨의 개인정보 보호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만난 국회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윤 씨가 만난 사람이 한나라당 의원이었더라도 사무처가 비공개로 했겠느냐”고 비난했다.
또 국방부가 운영하는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과 서울 송파구 장지동 남성대골프장 측도 한나라당 주성영(朱盛英) 송영선(宋永仙) 의원이 요구한 윤 씨의 출입기록 제출을 24일 거부했다.
주성영 의원은 “23일 국방부에 사전 연락을 했을 때는 주겠다고 말해놓고 정작 다음 날 방문하니 ‘국정조사를 하면 제출하겠다’고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尹씨 변호인들 “난 손뗄래”
5명중 3명 사임… 檢은 수사팀 확대
브로커 윤상림 씨의 정관계, 법조계 비리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김경수·金敬洙)는 포스코건설 임원에게서 “윤 씨가 인천 송도국제신도시 개발 등과 관련해 공사 이권을 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은 윤 씨가 포스코건설 하도급업체를 상대로 공사를 수주하게 해 주겠다며 금품을 뜯어냈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또 윤 씨와 돈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난 변호사 11명 가운데 윤 씨에게 사건 소개료 명목으로 돈을 준 사실이 드러난 변호사를 변호사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날 기존 수사팀에 검사 3명을 보강했다. 이로써 수사팀은 검사 5명에서 검사 8명으로 규모가 확대됐다.
박한철(朴漢徹)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수사가 길어지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어 수사를 신속히 마무리하기 위해 수사팀을 확대했다”고 말했다.
한편 윤 씨가 검거된 직후인 지난해 11월 말 변호사 5명이 윤 씨의 변호를 맡겠다며 수임계를 냈지만 현재는 3명만 남아 있다. 지난해 12월 19일 전직 검사장 출신 변호사 등 2명이 사임한 데 이어 이달 12일 로펌 변호사 1명이 사임했다. 윤 씨는 변호인이 잇달아 사임하자 이달 20일 변호사 1명을 추가로 선임했다.
법조계에서는 윤 씨 사건이 권력형 비리 의혹 사건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자 변호사들이 입장이 난처해질 것을 우려해 사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