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신년 회견에서 “당장 증세(增稅)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1주일 전 신년연설에서 “양극화 해소 등을 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재원(財源) 확충이 필요하다”면서 증세의 필요성을 제기했던 데서 한발 물러선 셈이다.
그러나 어제 발언은 당장 세율을 올리거나 복지세(福祉稅) 같은 세금항목을 신설하지는 않겠다는 뜻일 뿐이다. 노 대통령은 “지금은 증세 논쟁을 할 때가 아니라 감세(減稅) 주장의 타당성을 따져 봐야 할 때”라며 한나라당에 화살을 돌렸다. 이 말은 ‘납세자들의 부담을 줄여 줌으로써 민간부문의 투자와 소비 여력(餘力)을 키우고, 이를 통해 일자리 증대와 소득 이전을 꾀하자’는 감세론을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노 대통령은 증세 논쟁을 할 때가 아니라고 했지만 무책임한 얘기다. 대통령은 지난주 ‘재원 확충’ 발언을 함으로써 증세 논쟁을 증폭시킨 장본인이다. 스스로 논란을 키워 놓고 증세 비판론이 커지니까 거꾸로 감세론에 시비를 거는 것은 전형적인 논점 회피 수법이다. 노 정권이 증세만 꾀할 뿐, 감세를 받아들일 뜻이 전혀 없는데 왜 증세 논쟁이 아닌 감세 논쟁을 해야 하는가.
김대식 한양대 교수와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그제 국회에 제출한 ‘개방경제에서의 분배정책’ 보고서에서 “양극화 해소 등을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조세(租稅) 위주의 재분배 정책은 분배구조를 악화시키고 재분배 과정에서 성장 탄력을 떨어뜨려 저성장 기조를 고착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깊이 새겨야 할 내용이라고 우리는 본다.
어제 노 대통령은 “강도 높은 세출 구조조정과 예산 효율화를 통해 씀씀이를 최대한 줄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국민이 이를 믿을까. 줄기차게 공무원을 늘리는데도, 재정 지출의 비효율과 낭비 사례가 잇따라 밝혀지는데도 정부가 ‘강도 높은 절약’을 한다고 믿으라는 말인가.
기왕에 대통령이 말을 꺼냈으니 이제라도 ‘세금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기 전에 정부의 비만증(肥滿症)과 재정운용의 비효율 요인부터 수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