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신년회견에서 북한의 위조지폐와 전시(戰時)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지만 의구심만 키웠다. 대통령의 새해 외교구상에서 한미동맹의 복원과 이에 기초한 한반도 문제의 안정적 해결을 기대했던 국민이라면 실망과 불안을 느꼈음직하다.
노 대통령은 위폐와 관련해 “북한 체제에 압박을 가하고 때로는 붕괴를 바라는 듯한 미국 내 일부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미 정부가 그 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한미 간 마찰, 이견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중대한 외교적 사안에 대해 가정(假定)을 전제로 마찰을 예고하는 것부터가 적절치 않다. 미 정부도 “북의 정권교체(regime change)가 목적이 아니다”고 공언해 왔으므로 굳이 이런 식으로 걸고넘어질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는 위폐 제조는 ‘국제 범죄’이므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어야 했다. 위폐를 둘러싼 한미 간 갈등은 한국이 자꾸 북한을 두둔하는 태도를 보이니까 증폭되는 것이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북을 자극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지만 이는 원칙에 관한 문제다.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도 뜬금없다. 한미는 이미 이 문제를 공동 연구해 그 결과를 올 10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 올리기로 합의했다. 이를 토대로 환수를 추진한다고 해도 한미연합방위체제에 미칠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므로 실제 환수는 2015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 국방부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올해 안에 환수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도록 미국과 긴밀히 협의해 나가겠다”고 했다. “올해 안에 안 되면 지속적으로 해 나가겠다”고 덧붙이긴 했지만 환수 일정까지도 서둘러 확정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10년 뒤에나 가능한 일을 이렇게 몰아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러니까 ‘이 정권이 남북관계에 모종의 충격적 변화를 주려 한다’는 등 온갖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 위폐 문제로 미국과 각을 세우고 전시작전권 환수를 서두르겠다는 배경에 북한과 코드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무언가가 있기라도 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