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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미래로 미래로]日구마모토현 아트폴리스 프로젝트

입력 | 2006-01-31 03:04:00


《한 해 예산 1억2000만 원. 그것으로 불과 10여 년 만에 지역 이미지 혁신, 관광객 확대 그리고 국제적인 관심까지 불러낸 사업이 있다면? 일본 구마모토(熊本) 현의 창조적 정책 아트폴리스(KAP·Kumamoto Art Polis)가 그것이다. 아트폴리스란 구마모토 현의 각 도시에 빼어난 건축물을 만들어 가는 사업이다. 하지만 현 당국은 건설 예산은 한 푼도 지원하지 않는다. 기왕에 지방자치단체나 민간기관이 예산을 투입해 만들 예정이던 마을회관이나 다리, 미술관 등의 건조물들이 ‘잘’ 만들어지도록 그 과정에 참여해 옆에서 도울 뿐이다.》

○ 현의 이미지를 바꾼 67개의 건축 프로젝트

한때 미나마타병이라는 환경 재앙이 이곳에 있었다. 현의 미나마타 만 어민들을 덮친 이 공해병으로 인해 구마모토의 이미지는 무참하게 추락했다. 재기를 위해서는 새로운 이미지, 새로운 산업이 필요했다. 1980년대 구마모토 앞에는 ‘테크노폴리스’와 ‘아트폴리스’라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양자는 서로 관계가 깊었다. 테크노폴리스 정책으로 소니, NEC 등의 새로운 산업을 구마모토에 유치하려면 지역에 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걷어내며 사람과 기업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매력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아트폴리스 정책이었다.

두 정책의 중심에는 훗날 일본 총리가 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당시 지사가 있었다. 1983년 구마모토 현의 지사가 된 그의 행보는 신속했다. “남는 것은 문화밖에 없다”는 말을 남긴 그는 1984년 ‘활력, 개성, 윤기가 가득한 전원문화권의 창조’를 슬로건으로 한 ‘구마모토, 내일의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문화진흥 기본조례’를 제정하고 ‘공익신탁 구마모토21’이라는 이름의 문화기금을 조성했다. 그 클라이맥스에 1988년 아트폴리스 사업이 만들어졌다.

기왕 진행될 공공과 민간의 건축사업들이 당국에 신청되면 심사를 거쳐 아트폴리스 사업으로 지정됐다. 초대 커미셔너인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 씨는 발주자들과 건축가, 때로는 사용자인 시민들 사이에서 충분한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1988년 이후 현의 이 도시, 저 도시에서 74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67개가 완성되었다.

○ 아트폴리스의 핵심은 거버넌스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렌초 피아노는 현의 작은 섬마을 우시부카(牛深)를 위해 아름다운 하이야 대교(大橋)를 설계했다. 투명방풍스크린이 보행로 옆에 설치돼 바람을 맞지 않으면서도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이 883m 길이의 다리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우시부카의 시장 니시무라 다케노리(西村武典) 씨는 “아트폴리스의 경험을 통해 경관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그것을 마을 부흥에 적극 활용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세이와(청和) 마을의 분라쿠 극장도 성공 사례로 꼽힌다. 구마모토 시의 신치(新地), 오비야마(帶山) 등의 잘 짜인 주거단지는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인근의 환경을 자극하고 변화시킨다. 점들이 선이 되고 선들은 면으로 확대되어 나간다.

아트폴리스 사업은 지역의 문화적 활기도 자극한다. 구마모토 시내 가와라(河原) 정의 낡은 시장. 그 틈새에 혈기로 가득 찬 문화 게릴라들이 모여들었다. 작은 주택 설계로 아트폴리스 추진상을 수상한 구마모토의 젊은 건축가 나가노 세이지(長野聖二) 씨는 4평도 안 되는 혼자만의 사무실에서 모델을 만지며 말한다. “수준 높은 결과들을 가까이에서 본다는 것은 무척 좋은 자극이다. 구마모토 전체의 수준도 차차 올라갈 것”이라고….

내국인들만 즐겨 찾던 구마모토는 이제 국제적인 관심 속에 놓여 있다. 4년마다 국제 건축전이 열리고 해마다 방문객들이 늘어난다. 공식 방문객 중 90%가 한국의 건축인들, 공무원들이다. 무엇을 보고 돌아가는지, 과정보다 결과에만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닌지. 기실 아트폴리스 사업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통치 아닌 협치(協治) 즉, 거버넌스의 과정이다. 사업의 담당자 구와하라 신코(采原眞幸)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느 지사가 새로 부임을 해도 아트폴리스의 정책과 정신은 계속 유지되어 왔다.” 당연하다. 아주 적은 투자로 이만큼의 성공적인 효과를 안팎으로 만들어 내는 사업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관계자 모두가 사업의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강한 합의를 전제로 한다. 구마모토=이종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사진 제공 구마모토 현

시골에 들어선 전통인형극장 세이와마을 “부자됐습니다”

세이와 분라쿠 공연에 등장하는 인형의 얼굴들. 구마모토=박정훈 기자

일본 구마모토 시에서 남동쪽으로 50여 km 떨어진 세이와 마을은 관광객으로 북적대고 있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주민 200여 명이 농사를 지으며 살던 작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1990년 4월 주민들은 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던 전통 인형극 ‘분라쿠’를 활용해 아트폴리스 프로젝트 참여를 신청했다.

구마모토 현의 추천을 받은 건축가 이시이 가즈히로(石井和紘) 씨는 ‘자연미를 살려 달라’는 주민들의 의견을 감안해 에도시대 말기의 목조 건축 양식으로 극장을 완성했다. 얼핏 보면 빽빽한 나무 숲 속에 자리 잡은 움막 같지만 내부는 300명의 관람객이 동시에 인형극을 즐길 수 있도록 첨단시설을 갖춰 놓았다.

분라쿠는 공연자들이 검은 망토와 가면으로 몸과 얼굴을 가리고 뒤에서 줄을 이용해 인형을 움직이는 이 마을의 전통 인형극이다. 배우들은 일본 전통악기 샤미센(三味線)의 반주에 맞춰 특수한 억양과 가락으로 노래하고 말한다. 이 공연은 농사일을 하지 않는 마을 노인 17명이 맡고 있다.

극장 옆 물산관에서는 공연 중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 극장 관계자는 “도시락은 마을 주부들이 고장의 명물인 술 넣은 밥과 산채 절임, 튀김 등으로 직접 만든다”고 설명했다.

인형극이 명성을 얻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세이와 마을은 한 해 평균 15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이 마을은 인형극 공연 등으로 한 해 약 2억 엔(약 18억 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주민 나카시마 모토요시(55) 씨는 “늘어난 수입보다 우리 마을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에 더 만족한다”고 말했다.

와타나베 히사시(渡邊久) 극장장은 “극장이 생기면서 마을 주민들이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갖게 됐다”며 “은퇴한 노인들이 문화 공연의 주체가 돼 새 삶을 살고 있어 다른 지역에서도 우리 마을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구마모토=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