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는 길을 가는 모습과 하는 행동만 보아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노상풍정’. 사진 제공 김영사
《300여 년 전 '선비의 작은 예절'이 현대생활예절백서로 거듭났다. 소설가 조성기 씨가 최근 펴낸 '양반가문의 쓴소리'(김영사)는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문장가인 이덕무(1741~1793)의 '사소절(士小節·선비의 작은 예절)'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책이다.
'사소절'에서 이덕무는 성품과 행실, 언어생활, 의복과 음식, 행동거지 등에 걸쳐 선비가 알아 둬야 할 작은 예절을 소상하게 기록했다. 조 씨는 짧은 문장으로 응축된 뜻을 쉽게 풀고 주석을 달아 '사소절'을 현대의 예절 지침으로 새롭게 구성했다.》
이덕무는 사람의 성품을 △어떤 책을 읽는가 △존경스러운 인격자를 어떻게 대하는가 △바른 충고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등 세 가지 기준으로 판단했다.
사람을 판단할 때는 비슷한 성품을 잘 분별해야 한다고 권하고 있다. 관대하고 유순해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놀기 좋아하고 게으른 사람일 수 있다는 것. 강직한 성품과 과격한 성품, 분개하는 모습과 꼿꼿하고 단정한 태도, 좀스러움과 치밀함 등이 가려 살펴야 할 비슷한 성품의 사례들이다.
그렇다고 단점만 들추어내라는 뜻이 아니다. ‘장점에 따라 단점을 용납’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곧은 성품의 소유자는 고지식하기 십상이지만 장점인 곧은 성품을 생각하고 고지식한 단점을 용납하라는 것이다. 조 씨는 ‘용납한다는 말은 그가 바로 서도록 끝까지 감당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이덕무의 가르침에는 현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대목이 많다.
‘관직을 받은 사람을 축하할 때 봉급을 물어보지 말라’ ‘남녀관계를 정리할 때는 단호하게 하라’ ‘밥상이 차려지면 다른 사람이 기다리거나 음식을 제때 먹지 못하도록 지체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신이 나서 이야기하면 아는 이야기라도 끝까지 들어주어라’ 등.
조선 후기에도 정치에 지나친 관심을 가진 사람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이덕무는 ‘어떤 자가 사람을 만나자마자 요즘 조정에 무슨 새로운 소문은 없느냐고 묻기부터 한다면 그 자는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썼다.
몸가짐, 관계에 대한 덕목은 때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시시콜콜하다. 참외는 반드시 칼로 토막을 내어 먹으라고 과일 먹는 법까지 제시해 놓았는가 하면 남을 대할 때 하지 말라고 권한 사항들은 이렇다.
‘가려운 데를 긁거나, 이를 쑤시거나, 코를 후비거나, 몸의 때를 밀어 모으거나, 땀방울을 튀기거나, 버선을 벗거나, 벼룩과 이를 잡아 손톱으로 뭉개거나 하지 말 것.’
스스로도 심하다고 느꼈던지 이덕무는 ‘잔소리가 아니라 사람이 추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부득이 이런 충고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덕무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선비는 사회의 지배층이 아니라 인간적 성숙을 먼저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는 ‘여름에 질병 때문에 긴 옷을 입고 있는 사람 옆에서 덥다고 말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말을 타고 가다가 농부들이 모여 점심을 먹는 곳을 지날 땐 말에서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적었다. 그 기본 태도는 현대사회에서도 절실히 요구되는 ‘남에 대한 배려’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