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7집 음반을 발표한 가수 이수영. 그는 “새 음반을 냈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MBC 10대 가수 가요제 대상… 이수영!”
2003년 12월 31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 가수들에게 파묻혀 있던 한 여가수에게 카메라가 집중됐다. “뭐야, 뭐야, 내가 대상? 진짜? 나 맞아?”를 외치던 그녀, “감사합니다”라는 기쁜 표정도, “전혀 예상 못 했어요”라는 식상한 수상 소감도 할 수 없었다. 오로지 “꺽꺽”거리며 숨넘어가는 소리뿐이었다. 눈물은 마스카라와 함께 범벅이 됐다.
‘꺽꺽 여인’ 이수영(27)은 늘 결정적인 순간에 울보가 된다. 4집 ‘라라라’, 5집 ‘덩그러니’, 6집 ‘휠릴리’ 등 그녀가 부른 비가(悲歌)만큼이나 그녀의 눈물은 한(恨)스럽다. 그렇게 울었건만 그녀는 7집을 준비하는 1년 4개월 동안 여전히 눈물을 달고 살았다.
“지난해 10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부모님이 안 계신 제게는 너무나 큰 분이셨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앨범은 연기됐고 7집에 대한 부담감이 엄습해 왔죠. 베란다 문을 열고 23층 아파트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밤에 자다가 다음 날 눈뜨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이대로 내가 끝나는 느낌이었어요.”
계속 ‘침전’하는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 저 좀 살려 주세요”라고 비명을 질렀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것.
“만약 예정대로 10월에 7집을 발표했으면 전 부러졌을지도 몰라요. 1999년 데뷔 이후 7년을 쉬지 않고 달렸으니 매너리즘과 슬럼프가 한꺼번에 몰아닥쳤을 거예요. 하지만 올해 1월이 되니 그 절망감이 눈 녹듯 사라졌어요. 기도 덕분이죠. 은혜롭다는 생각에 7집 제목과 타이틀곡을 영어로 ‘신의 은총’이라는 의미를 지닌 ‘그레이스’로 정하고 막바지 작업을 했답니다.”
자신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축복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그녀. 그러나 축복이라 하기엔 23일 발매된 7집은 여전히 슬프다. 가수 이기찬의 코러스가 웅장한 미디엄 템포곡 ‘그레이스’는 ‘그레이스’라는 이름의 여성이 이별 후에 겪는 심정을 솔직하게 담은 곡이다. 슬픔에 울지만 씩씩한 척하는 모습이 양면성을 보여 준다.
“거짓말이야 다 거짓말”이라며 이별을 인정하지 못하는 수록곡 ‘시린’은 더 솔직하다. 또 권태기에 놓인 연인의 심정을 담은 ‘사랑도 가끔 쉬어야죠’나 “사실은 말야 이별은 너무 겁이나”라며 이별의 두려움을 노래한 ‘화해해’ 등 마치 하얀 깃털 같았던 발라드 곡이 격해졌다고 할까. 과거 ‘절제’, ‘인내’로 대표됐던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이번 음반에 수록된 13곡을 모두 제가 작사했어요.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고 울고 싶으면 울음을 토해내고 다시 씩씩해질 수 있는…. 그동안 마음고생한 제 모습을 솔직하게 담고 싶었죠.”
1999년 데뷔곡 ‘아이 빌리브’부터 7집 ‘그레이스’까지. 이 ‘꺽꺽 여인’의 인기 비결은 솔직함 때문이다. 잘 웃고 슬플 땐 하염없이 울고…. ‘착한 여자’로 지낸 지 7년째, 이제 앞으로 흘릴 눈물은 얼마나 남았을까.
“제 목표가 63빌딩에 ‘이수영 디너쇼’ 플래카드를 거는 거예요. 주름이 자글자글할 때까지 팬들과 함께 노래하는 것, 그게 제 인생의 ‘그레이스’랍니다. 오늘도 부모님이 보고 싶어 눈물이 나지만 어디선가 ‘내 딸 장하다’라며 절 지켜보시겠죠. 하하.”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