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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인터뷰]안드레아 보첼리 전화 인터뷰

입력 | 2006-02-01 03:00:00

사진 제공 유니버설뮤직


《1996년 11월 17일은 독일 출신의 복싱선수 헨리 마스케의 은퇴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팝페라 여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이 눈을 감은 한 남자 가수의 손을 잡고 등장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고풍스러운 반주가 나오자 두 가수는 눈빛 대신 서로의 마음을 맞춰가며 '타임 투 세이 굿바이'를 불렀다. 두 사람의 화음이 경기장에 메아리쳤고 사람들은 감동했다. 경기 종료 후 패한 헨리 마스케를 향해 2만2000여 관중들은 약속이나 한 듯 '타임 투 세이 굿바이'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날 이 남자 가수는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비록 앞을 볼 순 없지만 자신의 목소리로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 바로 '음악의 힘' 말이다. 》

사람들은 이탈리아 출신의 테너가수 안드레아 보첼리(48)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캐시미어 이불을 덮은 듯한 따뜻한 목소리, 낡은 레코드판 같은 아날로그적 감성, 시각 장애를 넘어선 음악적 깊이…. 그의 음악은 단순한 '팝페라' 그 이상이다. 이제 또 한 번 그에게 "좋았어", "최고야" 같은 긍정의 '추임새'를 넣어줄 때가 온 것 같다. 그가 다섯 번째 팝 음반 '아모르'를 24일 내놓는다. 음반 막바지 작업에 바쁜 보첼리를 전화 인터뷰 했다.

● "사랑은 삶의 엔진이죠"”

"늘 '사랑'하면 생각해오던 것이 바로 삶의 원동력, 일명 '엔진'이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사랑이 있어 가능한 것이죠."

2004년 11월 '안드레아' 이후 1년 3개월 만에 내놓는 이번 5집은 분명 그가 작정을 하고 만든 메가톤급 음반이다. 명 프로듀서 데이빗 포스터가 앨범 전체 프로듀싱을 맡았고 4인조 퓨전 재즈 그룹 '포 플레이'의 나단 이스트가 베이스를, 케니 지가 수록곡 '미 만치'에서 색소폰을 연주했다.

"이번 음반은 철저히 팝 음악으로 만들었어요. 난 오페라나 가곡을 부를 때와 달리 팝 음악은 '본능'에 의지해서 불러요. 조금 더 자유로운 영혼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죠. 아무래도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좀 더 신경을 많이 썼죠."

이번 음반은 '베사메 무초', '오톰 리브스' 등 192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인기를 얻었던 곡을 리메이크한 앨범이다. 시각장애 흑인 뮤지션 스티비 원더가 하모니카 연주와 백 코러스를 선사해준 '칸조니 스토나테'부터 여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듀엣한 '소모스 노비오스' 등 수록된 14곡 모두 솜사탕을 입에 베어 문 것처럼 부드럽고 달콤하다.

"스티비 원더야 말로 ‘젊음의 상징’일 정도로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었어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예전부터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는데 그녀는 마치 악기 다루듯 목소리를 내는 게 인상적이었죠."

● "음악은 내 삶의 본능이죠"

12세 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머리를 다쳐 시력을 잃은 지도 36년 째. 그러나 '장애'는 그의 인생에 1%도 안 되는 미비한 것이었다. 대신 99%를 차지하는 음악을 위해 노력했다. 사라 브라이트만과 부른 '타임 투 세이 굿바이'를 시작으로 데뷔 음반 '로만자'로 전 세계를 휩쓸었고 1999년 발표한 2집 '소뇨'가 발매 첫 주 빌보드 앨범차트 4위로 데뷔한 것은 팝음악계의 '사건'이었다. 한국에서도 그의 음악이 광고, TV 배경 음악으로 삽입 되면서 인기를 얻었다.

"내 목소리는 분명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에요. 그러나 타고난 재능이라도 노력해서 발전시켜야죠. 그게 바로 재능을 주신 분께 갖추는 예의 아닐까요?"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피사대학 법학과를 나온 그는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변호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굳은 심지는 결국 그를 무대로 이끌었다. 그는 법대에 진학한 이유에 대해서 "그냥"이라며 웃었다.

"가족들 중에 법조계에 계신 분도 있고 법대가 제일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그건 단순한 도전이었죠. 하지만 법대에 진학한 후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죠. 어릴 적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이 자꾸만 생각났고 다른 가수들 음악 들으면서 '이건 내가 더 잘 부를 수 있는데'라고 욕심도 났죠."

그는 "음악은 나를 이끌어주는 힘이고 영감을 주는 수단"이라며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고 기뻐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기쁨이자 자극"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를 '인간 승리 가수'라 부른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 칭찬이요? 은근히 부담돼요. 다만 내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는 사람들과 나와 함께 노래 부르는 동료 뮤지션들을 볼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인간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게 있죠. 바로 음악의 순수함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