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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의 북한 엿보기]위조담배-아편제조

입력 | 2006-02-01 03:00:00


《평안남도 성천군은 옛날부터 담배로 유명한 고장이다. 이곳 담배는 18세기 후반부터 왕실 진상용으로 선택될 만큼 향과 맛이 좋다. 풍광(風光)과 지수(地水)가 담배 재배에 알맞다. 북한에서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의 주역인 이후락(李厚洛) 중앙정보부장이 실각한 것도 성천담배 때문이라는 ‘믿거나 말거나’ 얘기까지 있었다. 김일성 주석이 이 부장에게 성천담배 두 박스를 선물로 주었는데 남한에 돌아온 이 부장이 박정희 대통령 몰래 피우다가 미움을 샀다는 것. 》

그런 성천담배가 1990년대 초반 팔자에 없는 금테 외제 상표를 둘렀다. ‘크라운(CROWN)’이라는 영국제 담배로…. 평양 용성구역 담배공장에서 비밀리에 생산했다고 알려져 있다.

비슷한 시기 함경북도 회령곡산공장에서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 회사 상표의 ‘555’ 담배가 생산됐다. 성천담배가 향초로 알려져 있다면 회령담배는 독초로 유명하다.

이후 ‘말버러’, BAT의 ‘크라벤A’ 등 위조 외제 담배가 잇따라 등장했다. 주로 중국에 알려진 외제 담배들이었다. 위조 담배 생산에 중국 헤이서후이(黑社會·범죄조직)의 돈이 흘러들어 간다는 증언도 있다.

1990년대 중반엔 북한 북부지역 일부 농장에 ‘백도라지 분조’라는 이색 분조(20여 명 규모의 농업생산단위)가 생겨났다. 양귀비에 백도라지라는 가명을 붙인 것이다. 가장 지력이 좋은 땅에 양귀비를 심고 가꾸었다. 7월이면 어린 학생들까지 총동원돼 아편 원액을 추출했다. 역한 냄새에 학생들이 쓰러지는 일도 많아 밭머리에 의료진까지 대기한다. 원액을 뽑고 난 열매에는 좁쌀처럼 생긴 고소한 노란 씨가 가득 차 있어 아이들의 간식으로 인기였다. 아편중독자도 생겨났다.

백도라지 분조에는 배급과 물자, 비료가 1순위로 조달됐다. 1999년부턴 남쪽에서 보내 준 비료도 양귀비 재배에 쓰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양귀비 생산은 점차 쇠퇴하고 있다. 재고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 입국한 새터민(탈북자) 중에는 양귀비를 재배하던 사람만 수십 명이 넘는다. 그러나 정부가 북한의 마약 생산을 경고한 적은 없다. 7000명이 넘는 새터민이 정부 조사 과정에서 생생한 증언을 남겼지만, 증언들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전문가 한마디

북한은 현재 지폐 위조와 관련된 의혹으로 미국의 본격적인 금융제재를 받고 있다. 북한 선박 ‘봉수호’는 마약이 발견돼 아직도 호주에 억류돼 있다. 북한이 비정상적인 불법 거래에 의존하는 것은 미국으로부터 각종 경제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지원국가로 낙인이 찍힌 북한이 무역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통로는 거의 차단돼 있다. 따라서 외화벌이 차원에서 북한의 각급 기관과 생산단위는 비정상적인 불법 거래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의 마약 밀매 등 비정상적인 불법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