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자신이 만든 ‘블록버스터의 문법’을 고스란히 거스르는 방식을 통해 복수의 고민과 인간적 고뇌를 이야기한 영화 ‘뮌헨’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스필버그 답다’는 게 뭔가. 1975년 ‘죠스’라는 영화로 전 세계에서 1억 달러가 넘는 수입을 올리면서 지구상에 ‘블록버스터’(초히트 영화)라는 말을 처음으로 생산해낸 사람이 스티븐 스필버그다. 화려한 볼거리로 시각을 마취한 뒤 핵폭발하는 클라이맥스로 완벽한 환상 체험을 선물하는 솜씨…. 이는 스필버그라는 상업영화의 신(神)에 의해 창시된, 블록버스터라는 ‘종교’의 교리와 같은 것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의 신작 ‘뮌헨’은 그래서 흥미롭다. 30년을 ‘써먹은’ 블록버스터의 문법을 스필버그는 스스로 조목조목 거스르거나 아예 부정해 버리기 때문이다. 스필버그는 왜 이런 자기부정을 감행할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영화 ‘뮌헨’의 본질이다.》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을 살해하는 테러가 발생한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팔레스타인인 11명을 살해하려는 목적으로 모사드 출신의 비밀 요원 애브너(에릭 바나)를 리더로 하는 5인조 암살단을 구성한다. 애브너는 목표물을 제거할수록 살인에 대한 죄책감과 복수의 정당성에 대한 고민에 휩싸인다. 결국 암살 팀 멤버들 역시 정체불명의 조직에 의해 하나 둘 목숨을 잃는다.
줄거리로만 보자면, ‘뮌헨’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스릴러일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끔 한다. 하지만 스필버그 감독은 시간을 경제적으로 압축해 사건을 착착 진행시키는 대신, 긴박한 순간들마다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도록 만든다.
이 영화는 영화적으로는 효율적이지 않아 보일지언정 실로 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낭비에 가까울 만큼 보여 준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은 테러를 하면서 오히려 겁에 질려 우발적으로 행동하고, 애브너가 이끄는 암살단은 방아쇠를 당길 사람조차 정하지 못해 제비뽑기를 하는 ‘정리가 안 된’ 모습들이다.
영화 ‘뮌헨’에서 애브너가 이끄는 암살단이 테러 배후 인물을 폭탄으로 제거한 뒤 황급히 현장을 빠져나가는 모습.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심지어 애브너의 암살단을 구성하는 도주 전문가 스티브(대니얼 크레이그), 폭탄 전문가 로버트(마티유 카소비츠), 뒤처리 전문가 칼, 위조 전문가 한스는 자기 분야의 전문기술을 폼 나게 선보이기보다는 지리멸렬한 채 우왕좌왕하는 쪽에 가깝다. 영화 전체를 흐르는 이런 리얼리티와 우발성의 기운은, 살해와 테러의 순간이 실제 보여 지는 것 이상으로 끔찍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심리적 증폭 효과를 가져온다.
암살단이 요리나 식사를 하며 숙의하는 생활 속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 주고 테러의 배후 인물 역시 알고 보면 아내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평범한 가장임을 드러내면서 영화는 “놈들을 처치해”라는 단순명료한 명령이 다다르게 되는 고통스러운 종착역을 보여 준다. ‘복수’가 아니라 ‘살인’만이 남는 중동의 추악한 현실 말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한번 해볼 수 있다. ‘스필버그의 자기 부정을 과연 관객은 원하고 기대하는 걸까?’
스필버그라는 이름을 믿고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당황하게 되는 ‘사태’는 스필버그가 애초 의도했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유럽 12개국을 넘나들며 찍은 이 163분짜리 대작을 보는 동안 밀어닥치는 감동이 어디서 줄곧 체험한 듯한 기성복의 느낌인 데다, 주장의 품질에 비해 영화적 부피가 필요 이상 큰 데서 오는 지지부진한 느낌마저 그가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공한 상업영화의 거장들은 때론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한 영화를 찍는다. 그건 분명 의미심장한 일이지만, 분명 불친절한 일이기도 하다. 9일 개봉.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