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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파워그룹 그들이 온다]최고재무책임자 (CFO)

입력 | 2006-02-02 03:14:00


‘계열사 사장 10명이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 하나를 못 당한다.’ 삼성그룹에서는 계열사 마음대로 미래 사업전략을 세우거나 투자계획을 실행할 수 없다. 구조본 재무팀이 각 계열사의 사업전략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조정을 거친 뒤 시행 여부를 결정한다. 각 계열사가 미래를 설계하려면 구조본 재무팀을 통과해야 한다. 따라서 삼성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핵심 권력으로 향하는 ‘직행 티켓’을 의미한다. 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이학수(李鶴洙·60) 구조본부장과 김인주(金仁宙·48) 사장도 CFO 출신이다. 이들 외에도 핵심 임원 가운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재무 출신이 많다.

CFO의 ‘득세(得勢)’는 삼성뿐만이 아니다. LG, 현대자동차, SK, 한화 등 대부분의 대기업이 CFO 출신을 최고경영자(CEO)로 중용하고 있다. 사업이 다양화하고 복잡해질수록 CFO를 우대하는 추세는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 ‘슈퍼 CFO’ 시대 열렸다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CFO는 기업의 자금관리, 예산기획, 세무 등의 업무를 주로 다뤘다. 하지만 정보기술(IT) 시대가 열리면서 CFO의 역할이 다변화하고 중요성도 커지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CFO는 회사의 모든 업무에 통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헤드헌팅 업체 유앤파트너즈 이기봉(李起鳳) 대표는 “CFO는 기본적인 재무 관리에서부터 위기관리, 신사업 진출, 인수합병(M&A), 주가관리, 심지어 인사관리나 국제통상, 마케팅 판매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기업 간 M&A와 전략적 제휴가 활발해지면서 상대 회사의 재무상황과 사업능력을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재무관리자들은 ‘슈퍼 CFO’로 변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CFO 출신 주요 임원그룹기업이름삼성구조조정본부이학수 부회장김인주 사장삼성전자최도석 사장삼성카드유석렬 사장삼성증권배호원 사장제일모직제진훈 사장LG㈜LG강유식 부회장LG전자권영수 사장LG CNS정병철 (전)사장GSGS홈쇼핑강말길 부회장GS홀딩스서경석 사장GS건설김갑렬 사장SKSK케미칼김창근 부회장SK건설손관호 사장롯데롯데삼강이광훈 대표동부동부제강이수일 사장

○ 기업의 명운이 그의 손에 달렸다

1999년 상무에서 올해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한 권영수(權暎壽·49) LG전자 재경부문 사장은 기획과 재무로 잔뼈가 굵은 정통 CFO. 그는 해외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와 M&A를 주도해 LG필립스LCD, LG노텔 등의 합작 법인을 탄생시켰다. LG그룹은 LG전자를 중심으로 이들 계열사와 사업계획을 조율하면서 미래 디지털 시장을 선점해 가고 있다.

권 사장은 “CFO는 미래전략, 신사업 진출, M&A 등 핵심 업무를 다루기 때문에 잘못 판단하면 기업에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다”며 “기업의 전략과 경영활동을 점검하면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NHN 허홍(許洪·43) 재무담당 이사는 수십 건의 M&A와 해외사업 진출로 회사를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허 이사는 “사업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IT 분야에서는 신속한 M&A와 제휴로 원하는 기술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며 “NHN이 세계적 인터넷 기업으로 거듭나려면 앞으로도 M&A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기 때문에 CFO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기업구조조정에 있어서도 CFO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권 사장은 “CFO는 기업의 건강을 체크하는 의사”라며 “병이 생기지 않도록 꼼꼼하게 살펴 예방하면서도,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곳은 과감하게 잘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젊은 CFO들이 자란다

공인회계사 출신인 송관용(宋官容·40) 네오위즈 재무담당 이사는 기업설명회(IR)의 스타로 통한다. 2002년 그가 CFO가 된 뒤 3년간 네오위즈는 IR협의회 대상(大賞) 등 6개의 크고 작은 IR상을 받았다. 네오위즈는 송 이사가 CFO로 재직하는 기간 중 IT 기업들을 인수해 3대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진(金秦·42) 금강오길비그룹 경영지원담당 부사장은 한글과컴퓨터에서 보여 준 뛰어난 재무관리 능력 덕분에 스카우트됐다. 그는 한글과컴퓨터 재직 당시 과감한 구조조정과 자회사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회사를 흑자 전환시켰다.

‘금녀(禁女)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재무관리 분야지만 최근에는 몇몇 여성이 약진하고 있다.

1990년대 대우중공업 미국 본사 설립과 스웨덴 볼보그룹의 한국 건설기계사업 진출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제니스 리(45) 하나로텔레콤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은 2004년 하나로텔레콤으로 회사를 옮긴 뒤 두루넷 합병을 주도해 통신시장에서 회사의 위치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현재 한국 CFO협회에서 유일한 여성 이사다.

최근 독일계 제약회사 머크에서 프랑스계 건축자재회사 라파즈코리아로 자리를 옮긴 이희숙(李喜淑·44) 전무도 활약이 두드러지는 여성 CFO. 이 전무는 머크가 6년간 연평균 30%의 매출 신장률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살림살이 하는 것처럼 꼼꼼하고 자녀 교육을 할 때처럼 치밀하게 준비하는 게 여성 CFO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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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 CFO는 공부중… 모임중…

최외홍 삼성전자 부사장이 제4기 서울대 CFO 전략과정에서 기업 CFO들을 대상으로 ‘신뢰도와 스피드 확보를 위한 재무보고 통제 시스템’이란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대 경영대

기업에서 CFO의 역할과 비중이 커지면서 CFO들끼리 정보를 나누는 모임과 교육과정도 생겨났다.

2001년 설립돼 국내 CFO 모임의 모태로 자리 잡은 ‘한국CFO스쿨’은 국내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 재무책임자 550명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이 모임의 심규태(沈揆台) 대표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안정성과 효과적인 투자, 가치지향 전략 연구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몇몇 재무담당자들이 토론을 시작한 것이 모임의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초기엔 내실경영이 모임의 화두였지만 요즘은 해외진출과 관련된 전략 수업에 관심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1주일에 한두 번씩 열리는 강좌는 주로 국내외 유명 현직 CFO의 강의로 짜인다. 벤처 CFO 과정, 고급 CFO 과정에 이어 올해부터는 글로벌재무협상 과정이 추가됐다.

2004년 개설된 ‘서울대 CFO 전략과정’은 6개월 과정에 모두 72개의 강좌로 짜였다. 한 학기 40명 안팎의 CFO가 수강하고 있다. 강사로는 서울대와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국세청 및 금융감독원 간부, 대기업 CFO들이 나선다.

과정을 수료하면 ‘슈퍼CFO 클럽’ 회원이 된다. 150명의 회원으로 운영되는 이 클럽은 매달 모임을 열고 경제 관련 현안에 대한 정보를 나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