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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황태훈]강남 집값 잡겠다고 서민 목조르나

입력 | 2006-02-04 03:06:00


서울 송파구의 고층 아파트에 사는 문모(63) 씨는 3년 전 정년퇴직했다. 집 한 채가 전 재산이다.

30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돈을 모아 36평짜리를 마련했다. 이사를 가지 않고 23년 동안 살았지만 집값이 올라도 반갑지 않다. 재산세가 2년 사이에 3배 가까이 올랐기 때문이다.

아파트 가격은 10억 원 정도. 매달 100만 원 남짓한 국민연금이 소득의 전부인데 해마다 세금이 올라 생활이 빠듯하다.

문 씨는 서울 강남을 비롯한 투기과열지구에 재건축개발부담금제도를 도입하고 재건축 허용연한을 연장할 방침이라는 기사를 읽고 3일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먼저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 주민은 모두 죄인이냐. 요즘 부동산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집을 처분하려 해도 세금 부담이 커서 팔 수가 없어요.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서민의 목을 조르고 있으니 누구를 위한 정부입니까.”

“정부는 강남에 사는 시민을 모두 죄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집값만 오르면 강남을 들먹이니….”

부동산 업계도 불만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A부동산중개업자는 “시민이 고통을 받건 말건 재건축시장을 포기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이제는 ‘정부’라는 말만 들으면 겁이 덜컥 난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강남의 집값 상승은 재건축 때문이 아니라 사회간접시설이 잘 갖춰진 강남에 대한 수요가 많기 때문”이라며 정부 방침에 이의를 제기했다.

다시 문 씨 얘기를 들어 보자. 그는 “강남의 일부 부유층은 세금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건축 아파트를 구입하는 기회로 삼는다”고 말했다.

또 강남 집값 잡기에만 ‘다걸기’(올인)할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낙후한 강북에 상징적으로 초고층 아파트를 세우고 교육문화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소수의 투기꾼을 잡기 위해 다수의 서민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잘못을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황태훈 사회부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