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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카트리나 복구, 흑인은 또 외면당해

입력 | 2006-02-07 03:05:00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연두 국정연설에서 미국의 미래에 대해 소리 높여 외쳤다. 여기서는 부시 대통령이 말하는 미국과 다른 ‘또 하나의 미국’, 즉 연설에서 언급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해 1월까지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를 조사한 뒤 내가 얻은 결론은 인종과 빈부의 차에 따라 허리케인의 의미가 전혀 달랐다는 점이다.

2005년 8월 멕시코 만 연안을 덮친 허리케인은 뉴올리언스의 80% 이상을 수몰시켰다. 피난 권고가 내려졌다고는 하지만 대중교통수단이 제때 마련되지 않아 이동수단이 없는 군중이 홍수 한가운데 남겨졌다.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그 광경을 아직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언뜻 보기에도 가난해 보이는 피난민의 대부분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이들의 대부분은 현재 근교의 트레일러 캠프나 텍사스 플로리다 등지에 피난한 채 뉴올리언스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허리케인 피해를 보기 전 뉴올리언스 인구는 대략 48만 명이었지만 지금은 10여만 명에 지나지 않고 앞으로도 28만 명을 넘을 가능성이 많지 않다. 생활을 가능하게 해 줄 직장이나 땅이 없어 흑인들이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흑인 인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로어 9번 지구에서는 전혀 복구가 시작되지 않았다. 콘크리트 뼈대만 남아 있는 집과 뒤집힌 채 나뒹구는 자동차 등 피해 직후의 상태 그대로 방치돼 있다. 최근 이곳에 출입이 허용되기는 했지만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집은 껍데기만 남아 있다. 돌아가 봐야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트레일러 캠프에 피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흑인이다. 이들은 허리케인과 함께 일자리도 잃어버려 현 상태가 지속되면 복지에 의존해 연명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리고 트레일러는 많지만 트레일러 캠프는 적다. 트레일러 캠프를 흑인, 범죄, 마약, 땅값 하락과 동일시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흑인만 허리케인의 피해자가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백인이 다수인 지역은 복구 양상이 다르다. 이미 공사 차량이 드나들고 있고 돌아온 사람도 많으며 재건의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이들은 돌아올 수 있는 일자리와 재산이 있다. 이들 중에는 가난한 흑인들이 없어짐에 따라 뉴올리언스가 이제껏 없던 아름다운 고장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백인들은 본인이 직접 보지도 않았으면서 흑인의 성폭행이나 약탈을 당연히 있었던 일로 간주해 이야기하고 있다. 반면 흑인들은 “제방은 무너진 것이 아니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됐다”, “부자 동네를 지키기 위해 흑인 동네를 희생시켰다”는 아무 증거도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백인과 흑인의 관점 사이에는 절망적이라고 할 만큼 머나먼 거리가 있다.

1960년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시대에는 흑인의 미국과 백인의 미국이 공존할 것이라는 기대와 전망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극소수의 흑인이 미국 중산층 사회에 통합된 뒤 남겨진 저소득층 흑인들은 단지 자신은 언제나 희생자가 될 뿐이라는 체념을 가슴속 깊이 간직한 채 살아 왔다.

허리케인이 습격한 지 벌써 5개월이 지나 이제는 피해에 관한 보도도 거의 사라져 간다. 직업과 살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부시 대통령에게서, 또한 미국 국민 다수의 무관심 속에 다시 잊혀 가고 있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