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파임커뮤니케이션스
《“죽이느냐 살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6일 오후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그녀의 봄’ 연습장. 공연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건만, 이 작품의 작가이자 연출자인 김학선(36) 씨는 극의 마지막 대목인 11장과 12장 결말 처리를 놓고 여전히 고민 중이었다.》
○ “논의 과정 통하면 연기 쉽죠”
당초 주인공 김철희 한기주 리원석 중 김철희만 총에 맞아 죽는 것으로 설정했으나 다시 한기주도 김철희가 죽이고 김철희는 자살하는 것으로 결말을 바꾼 것.
하지만 무대에서 동선(動線)을 체크하다가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연출은 배우들을 불러 모아 다시 논의를 시작했다.
“아까 바꾼 대본대로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뭘.” “갑자기 각목에 쓰러진 후 내가 무기력해지는 대목이 좀 이해가 안 가.” “그 장면에서 권총은 누구 손에 있게 되는 거지?” 배우들이 각자 한마디씩 쏟아냈다.
“공연이 이틀밖에 안 남아 연습할 시간도 부족한데 왜 배우들과 일일이 토론해 가며 작품을 수정하느냐”고 물었다. 김 씨는 “배우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확신”이라며 “함께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배우가 배역에 대한 확신과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갖는 순간, 연기는 쉬워진다”고 했다. 어쩌면 그 자신이 배우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김 씨는 연극 ‘눈 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등의 배우로 낯익은 얼굴. 하지만 2003년 ‘저 사람 무우당 같다’를 직접 쓰고 연출해 연극계에서 “극작과 연출이 모두 빼어난 작품”이라는 평을 얻었던 재능 있는 신진 극작가 겸 연출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봄’은 배우로만 활동하던 그가 3년 만에 다시 극작가와 연출가로 돌아와 선보이는 작품.
이번 연극에는 ‘마르고 닳도록’ 등에 출연한 국립극단 출신의 최원석, ‘빨간 도깨비’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 준 최광일, ‘차력사와 아코디언’의 윤상화 등 이름 석자만으로도 신뢰할 수 있는 배우들이 출연해 기대를 모은다.
포스터에서 웃통을 벗어젖힌 사진으로 눈길을 끄는 최광일은 동성애자 ‘한기주’를 맡았다. 그러고 보니 그의 왼쪽 귓불에만 반짝이는 귀고리가 하나 달려 있었다. “한기주 역을 위해 뚫었다”고 했다. 남자인 한기주와 김철희(최원석) 간의 키스신도 한 번 등장한다. 하지만 김철희가 자신을 못 잊는 여성 경호원 리원석을 떼어내기 위해 벌이는 충동적인 행동으로 설정돼 대학로에 퍼진 소문(?)과 달리 동성애 코드와는 거리가 멀다. 여주인공 리원석은 뮤지컬에서 주로 활동했던 채국희가 맡았다.
○ 南과 北, 그리고 인간 군상
이 연극의 배경은 통일된 한국의 가상도시 ‘경도’. 이곳은 남북의 ‘막장인생’들이 모여든 무법천지 같은 곳. 김철희는 러시안룰렛을 하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을 산다. 이런 김철희를 좋아하는 한기주와 리원석 등 세 남녀의 관계는 경도호텔 운영권을 둘러싼 남북 사업가들의 세력 다툼과 얽히며 비극으로 치닫는다.
김 씨는 “날마다 목숨을 담보로 ‘딜’을 하는 김철희는 핵을 담보로 한 북한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한기주는 남한사회를 상징한다”며 “환상이 아닌 현실에서 통일은 나와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와 공감이 전제돼야 함을 김철희와 한기주의 관계를 통해 보여 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8∼28일. 화∼금 8시, 토 4시 7시 반, 일 3시 6시. 1만5000∼2만5000원.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02-762-9190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