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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문 직업학교를 가다]이탈리아 국립 미술품복원학교

입력 | 2006-02-11 03:06:00

이탈리아 국립 미술품복원학교 학생들이 교수의 지도 아래 복원 실습을 하고 있다. 복원 작업에는 성분분석 능력과 역사 지식 등이 필수이다. 화학원소를 파악해 원래의 색깔을 만들기도 한다. 로마=이호갑 기자


《‘휴∼.’ 고고학 연구실의 작업대에 앉은 마멜라 파에타(22) 씨는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공기압축기로 그리스 시대의 채색토기에서 공들여 켜켜이 쌓인 먼지를 제거하고 있었다. 긴장한 듯한 표정의 그의 손에서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뿌연 먼지를 제거하니 숨겨져 있던 꽃문양이 하나씩 환하게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파에타 씨는 1월 18일 로마 시내를 관통하는 테베레 강변의 이탈리아 미술품복원학교(ICR·www.icr.beniculturali.it)를 방문했을 때 만난 1학년 여학생. 파에타 씨는 “책으로 보아 온 유물을 직접 다룬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고 흥분된다”고 말했다.》

1939년 이탈리아 최고의 복원전문가 체자레 브라디에 의해 세워진 ICR는 문화재 복원과 보존은 물론 복원전문가를 양성하는 국립기관이다. 유적문화부 직속기관이며 신입생 선발위원회는 대통령령에 따라 구성된다.

보통 직업학교 과정이 1년인 데 비해 이곳 과정은 4년이며 해마다 20명 안팎의 학생만 뽑는다. 교양과 전공을 포함해 최소 20∼25개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1∼3학년 때 이론과 실습을 하고 4학년 때 졸업논문을 쓴다. 지원 가능 연령은 만 18∼30세.

ICR에서는 신입생 때부터 작품 원본으로 복원 작업 실습을 한다. 파에타 씨가 작업에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유화 복원전문가인 마리조 마노(50) 교수는 “학생들이 생생한 감각을 익히면서 복원의 신성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술품 복원에는 최첨단 과학기술이 동원된다.

1월 19일 오전 11시 루이지 아르세리(52) 교수와 함께 로마 시내 콜로세움 인근의 성 프란체스코 파올로 광장에 자리 잡은 화학분석실을 방문했다. 국가보안시설이란 이유로 수차례 거절당했으나 사진 촬영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겨우 취재 허가를 받았다.

그는 먼저 유기물질 분석실로 안내하며 “각종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색소반응 검사를 통해 사용된 물감이 어떤 물질로 된 것인지 밝혀내는 기초 작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성분분석실인데, 초정밀 현미경으로 돌 가죽 금속 나무 등을 분석해 시대와 연도를 측정한다. 불필요한 물질을 제거하고 부서지기 쉽거나 약해진 부분도 보강한다.

바로 옆방의 금속분석실에서는 연구원들이 X선과 금속용 현미경으로 1400∼1500년대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도끼의 금속 결정을 분석해 제작 시기를 확인하고 있었다. 고배율 현미경으로 17세기 유화의 색소 파편을 관찰해 보니 마치 잘게 깨진 유리 조각 같은 형상이 드러났다. 분석 과정에서 이물질인지 파편인지 판단하며, 복원할 때 어떤 물감을 쓸 것인지도 결정한다. 또 최첨단 분석프로그램을 사용해 질소 칼륨 등 화학 원소를 파악한 뒤 원래의 색을 찾아내기도 한다.

ICR의 수업은 월∼금요일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3시 반까지. 토요일 오전에도 가끔 수업이 있다. 이론과 실습이 병행된다.

1학년생 엔리코 그라놀리니(25) 씨는 “매일 학습량과 숙제가 많아 방과 후에도 도서관에서 살아야 하지만 중도 탈락자가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며 학구적 분위기를 뽐냈다.

매년 11월 첫째 주 월요일에 개강해서 7월 10∼15일경 방학에 들어간다. 하지만 쉬는 것이 아니라 교수진과 함께 현장 실습을 나간다. 대형 건축물 등은 직접 찾아가야만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벽에 그린 ‘최후의 심판’을 비롯해 로마 일대의 유명한 유적과 유물 복원은 대부분 ICR의 솜씨로 이뤄졌다고 보면 된다.

외국 정부의 요청이 있으면 정부 지원을 받아 해외 출장 복원을 하기도 한다. 2003∼2004년 이라크 니네베 주의 궁전 복원과 2000년부터 3년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복원작업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복원팀은 교수 1명과 20명가량의 학생, 역사가, 화학자로 구성된다. 작업 기간은 짧으면 3개월, 길면 3년 정도 걸린다.

복원 활동 참가 경력은 졸업 후 박물관, 미술관, 복원 관련 기관에 취직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할 때 크게 도움이 된다. 취업 시 월급은 3000∼5000유로(약 357만∼578만 원)로 이탈리아 대졸자 임금의 중간 수준.

유학 생활비는 월평균 1000∼1200유로(약 116만∼140만 원). 로마 시내 외곽의 방값은 월 300∼400유로, 공과금 50∼100유로, 식비 300∼400유로 등이다.

로마=이호갑 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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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차노 자마르코 입학처장

“언어가 가장 중요합니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언어입니다.”

로마 미술품복원학교(ICR) 신입생 선발 책임자인 루차노 자마르코(60·사진) 입학처장은 외국 학생이 학업을 제대로 마치려면 유창한 이탈리아어 구사가 필수적임을 거듭 강조했다.

―왜 그런가.

“입학 때 가장 먼저 이탈리아어 구두시험을 본다. 첫 관문에서 떨어지는 외국 지원자가 많다. 수업이 모두 이탈리아어로 진행되는데 이탈리아 출신도 따라가기 힘든 과목이 많다. 특히 유기화학, 광물학, 물리학 등은 강의 내용이 어렵고 시험도 매우 까다롭다.”

―외국 학생은 얼마나 되는지.

“과거 외국학생 5명을 할당했는데 2000년부터 그런 제도가 폐지됐다. 그 이후 외국인 지원자는 해마다 있었지만 합격자는 없었다.”

―특별한 능력이나 적성이 필요한가.

“예술적 감각이나 능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예술복원작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있으면 된다. 일반적으로 침착하고 꼼꼼한 학생의 성적이 좋기는 하다.”

―사립 복원학교도 있다고 들었는데….

“국립 복원학교는 로마와 피렌체에만 있으며 사립 복원학교는 이탈리아 내에 20여 개 있다. 하지만 수준 차가 크다. 당연히 로마 ICR가 최고다. 최고 실력을 자랑하는 교수진이 최고 시설에서 최고 실습 재료를 갖고 가르친다. 교육 수준과 방법도 다르다. 굳이 우리와 비견할 만한 대상을 꼽는다면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복원학교 정도일까. 우린 국립이라 학비가 무료다. 책값도 도서실에서 복사해 쓰기 때문에 생활비 말고 별도의 돈은 많이 들지 않는다.”

로마=이호갑 기자 gd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