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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입력 | 2006-02-11 03:06:00

그림 박순철


“과인은 자방의 말을 듣고 항왕을 뒤쫓고 있으나, 애초에 이 일은 과인 혼자 힘만으로는 될 일이 아니었소. 제왕(齊王) 한신과 위(魏)상국 팽월 같은 제후들이 대군을 이끌고 과인을 도와야만 초군을 쳐부수고 항왕을 이길 수 있소. 그런데 한신과 팽월이 약조를 어기고 오지 않으니 실로 걱정이오. 이번 고릉의 싸움에서 낭패를 본 것도 우리 힘만으로 항왕을 이기려다 이리 된 것이오.”

한왕이 장량을 불러 놓고 푸념처럼 그렇게 말했다. 장량이 담담하게 받았다.

“우리가 초나라에 한 싸움을 내준 것은 사실이나, 대왕께서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그래도 평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곳에서 급하게 얽은 진채에 의지해 항왕의 강습을 물리쳤으니, 그 일만 해도 지난 일년 광무산에서 겪은 궁색함과는 비할 바가 아닙니다. 거기다가 싸움에 져 흩어졌던 우리 군사들이 다시 찾아오고, 어제 오늘 우승상 조참과 어사대부 관영의 군사가 보태져 한군은 다시 10만 군세를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를 이긴 초군은 곡식 한 톨 없이 추운 겨울 들판을 헤매며 의지할 곳을 찾고 있습니다. 이대로 버려두어도 초군은 머지않아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후들이 약조를 따르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딴청을 부리는 것 같은 장량의 말에 한왕이 답답한 듯 다시 물었다. 그제야 장량이 한왕의 물음을 정색으로 받았다.

“초군이 곧 무너지려 하는데도 한신과 팽월이 오지 않는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한신을 제나라 왕으로 세웠으나 마지못해 그리 했을 뿐, 대왕께서 원래 뜻하신 바는 아니었습니다. 한신에게 내리신 것도 제나라 왕의 인수(印綬)와 의장(儀仗)뿐이었고, 도적(圖籍)과 명부(名簿)를 내리고 땅을 갈라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다 한신이 제 힘으로 차지한 땅도 아직은 그 다스림이 굳건하게 뿌리 내리지 못했습니다.

또 팽월은 벌써 세 해째 양 땅을 치달으며 항왕의 양도를 끊고 초군의 뒤를 시끄럽게 하여 대왕을 도왔으나, 위(魏)나라 상국이란 허울뿐 땅 한 뙈기 얻은 바 없습니다. 원래 팽월을 위왕으로 삼지 못한 것은 위표(魏豹)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위표는 죽었고, 팽월도 오래 전부터 왕이 되기를 바랐으나 대왕께서는 아직도 그 바람을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슨 신명으로 대군을 모아 먼 길을 달려오려 하겠습니까?

만약 대왕께서 천하를 그들과 함께 나눌 수만 있으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한신과 팽월을 이리로 불러들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수양(휴陽) 북쪽으로부터 곡성(穀城)에 이르는 땅을 갈라 팽월을 그곳 왕으로 삼으시고, 제왕 한신에게는 진현(陳縣)에서 동쪽으로 바닷가까지 그 봉지를 정해 주십시오. 특히 제왕 한신은 집이 초나라에 있어 고향을 되찾으려는 간절한 뜻이 있을 것입니다.

대왕께서 이 땅을 잘라 한신과 팽월에게 내주기를 허락하실 수 있으면, 그 당장이라도 두 사람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나, 그러실 수 없다면 앞일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그 두 사람에게 땅을 내리시어 각기 스스로를 위해서 싸우게 하십시오. 그리 하시면 초나라를 무찌르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진작부터 먹은 마음이 있는 듯한 대답이었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