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의 디자인 연구 모임 ‘유쾌한 커미티’. 검고 붉은 색상의 드레스 코드와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통해 역발상을 도모한다. 위 제품은 태평양의 헤라 마스카라와 라네즈 슬라이딩 팩트. 사진제공태평양
《태평양의 ‘디자인 이노베이션 포럼’, CJ와 한샘의 디자인 센터, 웅진코웨이의 ‘디자인 프로젝트’…. 국내 기업 곳곳에서 “디자인!”을 외치고 있다.
디자인은 제품의 품질은 물론 소비자의 취향과 품격도 지켜주기 때문이다.
디자인 섹션 시리즈 2회에서는 태평양의 ‘슬라이딩 팩트’, CJ의 ‘햇반’ 용기, 한샘의 부엌가구 ‘키친바흐’, 웅진코웨이의 공기청정기 등 디자인 성공 사례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3일 오전 8시 반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태평양 건물 회의실.
파티 모임도 아닌데, 아침부터 검은색과 붉은색의 옷을 감각적으로 차려입은 남녀 직원들이 모여들었다.
태평양 디자인경영실을 주축으로 결성된 ‘유쾌한 커미티’가 열리는 날이다. ‘유쾌한 커미티’는 직원들이 창의적인 디자인 개발을 위해 자발적으로 결성한 연구 모임이다. 이날의 드레스 코드는 ‘블랙&레드’.
최근 급부상하는 중국 베이징 다산쯔(大山子) 예술지구를 공부하기 위해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색을 드레스 코드로 정했다. 태평양 럭셔리디자인팀 이오경 씨가 홍콩의 유명 건축가 게리 창, 그래픽 디자이너 앨런 찬에 대해 준비한 자료를 발표하자 10여 명의 직원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중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디자인 결정에 적극 가담한다” “아직도 중국의 대다수 기업은 디자인을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생각한다”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디자인은 기능만 강조해도 안 되고, 감성에만 호소해도 안 된다”….
이들은 또 해외 유명 브랜드 향수 제품을 함께 감상하면서 화장품 패키징 디자인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붉은색 보석을 세공한 듯한 ‘까르띠에’, 투명한 용기 뒷면에 나비 문양을 넣어 용기의 공간감을 연출한 ‘살바토레 페라가모’, 가마솥 같은 디자인으로 용기를 무겁게 만들어 고급스러움을 극대화한 ‘겔랑’ 향수 등이 ‘연구’ 대상이 됐다.
“아무래도 용기가 묵직해야 고급스럽다니깐.”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곧장 시장 선점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죠.”
이처럼 전사(全社)적으로 ‘열려 있는 감성’이 태평양의 디자인 파워다.
미국 뉴욕에 있는 태평양의 ‘아모레퍼시픽 뷰티갤러리 앤드 스파’. 미와 감성을 접목시켜 디자인한 공간이다. 사진 제공 태평양
태평양은 ‘유쾌한 커뮤니티’ 이외에 지난해 ‘디자인 이노베이션 포럼’도 만들었다. 서경배 대표이사 사장 등 임원을 대상으로 한 이 모임은 매달 국내외 디자인 전문가들을 초빙해 디자인 현황을 공유한다. 올해부터는 전 직원으로 범위를 넓혀 ‘디자인이 경쟁력이다’란 주제로 온라인 디자인 교육도 시행하고 있다.
태평양은 화장품 회사답게 국내 중견 기업 중 디자인에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기업이다. 한국디자인경영대상 최우수상, 대한민국디자인경영대상 대통령상, 뉴욕 페스티벌 어워드와 월드스타 어워드 등 수상 실적은 그 결실.
태평양의 ‘유쾌한 열린 감성’은 국내외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라네즈의 ‘슬라이딩 팩트’는 이노디자인 김영세 씨가 20대 ‘디지털 감성’에 착안해 구성한 슬라이딩 휴대전화 형태의 디자인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남성용 브랜드 오딧세이는 홍익대 간호섭 교수와 제품 기획 초기부터 함께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 새 제품을 선보일 예정. 홍익대 등 대학과의 산학 연계도 활발하다.
태평양은 또 디자인의 영역을 매장 등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다. 소비자와 제품이 만나는 점접인 매장에 대한 디자인이 제품 디자인 못지않게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태평양 이태경 디자인팀장은 “이제 디자이너는 제품 디자인의 영역을 넘어 공간 창출 능력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태평양은 미국 뉴욕 ‘아모레퍼시픽 뷰티갤러리 앤드 스파’와 서울 중구 명동 ‘디 아모레 스타’ 매장 인테리어를 서울 광진구 광장동 W서울워커힐호텔 디자인으로 이름난 캐나다 출신의 디자이너 야브 푸셸버그 씨에게 맡겼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디 아모레 갤러리’는 영종도 국제공항 프로젝트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 씨가 디자인한 ‘작품’이다.
최근 기업이미지통합(CI) 작업도 진행하고 있는 태평양의 디자인 화두는 ‘양손 경영’. 럭셔리(Luxury)와 매스(Mass), 기초화장품과 색조화장품 등 다양한 계층을 맞춤형 제품으로 만족시키겠다는 전략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