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이노 디자인
《실리콘밸리의 핵심 지역인 팰러앨토 시(市)는 세계적인 산업디자인의 현주소를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곳이다. 벤처의 메카이기도 하지만, 벤처와 함께 글로벌 히트를 꿈꾸는 디자인 회사들도 나란히 있다. 팰러앨토는 세계 산업디자인의 메카이기도 한 것이다. ‘이노 디자인’의 김영세(사진) 대표는 이곳에서 구루(guru·지도자)로 인정받는다. 그는 MP3 ‘아이리버’ 등 세계적 히트작을 디자인했다. 그에게 팰러앨토의 디자인 경쟁력과 인프라에 대해 들었다.》
팰러앨토에는 실리콘밸리의 모태가 된 대학생들 벤처 신화의 요람인 스탠퍼드대가 있다.
지금도 이곳에는 벤처 회사가 수시로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날마다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들이 탄생하고 있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회사인 HP 애플 IBM도 모두 여기에 있다.
이곳의 첨단 기술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이런 기술을 가진 회사의 마케팅에 디자이너가 개입하기 위해서는 최고로 인정받지 않으면 안된다.
신생 벤처에서 대기업까지 이곳의 기업들은 기술 개발과 동시에 외부의 디자인 회사를 찾는다. 그러나 여기서 디자인 회사는 ‘을’의 입장에 있지 않다. 디자인 회사는 벤처가 들고온 것이 자신이 구상해 둔 아이디어에 부합하면 계약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거절한다. 제조 회사가 단순히 디자인 회사를 아웃소싱하는 게 아니다.
미국 기업들은 기술보다 디자인 유출에 더 예민하다. 이들은 연구개발(R&D)센터보다 디자인센터를 공개하는 것을 꺼린다. 기자들이 이 회사들의 디자인센터를 취재하려 하면 무척 까다로울 것이다. 그 이유는 미국 기업들은 기술은 진화 발전하는 것이지만 디자인은 ‘찰나’라는 인식을 깊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팰러앨토의 사례를 보면, 디자이너가 상상력과 창의력을 구현할 재능만 갖추고 있으면 기술을 따라온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특히 이 곳에는 신제품 디자인과 관련된 모든 정보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제품 공정망이 거미줄처럼 짜여 있다.
획기적인 디자인 아이디어가 나오면 이를 시제품으로 만들 곳, 투자를 할 만한 곳, 디자인에 부응하는 기술력을 갖춘 공장, 그리고 브랜드가 그물망처럼 연결돼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제품으로 나오는 의사결정의 과정이 빠른 것이다.
한국의 기업들도 이런 시스템을 통해 TV 등 가전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디자인 국가로 더 나아가려면 다른 기업들을 포함해 폭넓은 디자인 네트워크가 갖춰져야 할 듯하다.
나도 1년에 여러 차례 ‘블랙박스’를 들고 서울을 방문한다. 이 박스 안에는 그동안 구상해 온 아이디어가 시제품 형태로 들어 있다. 이 아이디어를 구입한 회사는 그에 맞는 부품을 개발해 디자인의 속을 채운다.
팰러앨토=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