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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盧정부 3년 따져 보기

입력 | 2006-02-14 03:05:00


청와대는 ‘따져 보기, 참여정부 3년’이라는 글을 8일부터 홈페이지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25일의 노무현 대통령 취임 3주년을 앞두고 민간 전문가들보다 먼저 ‘검증’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역시 청와대답다. 국정에 대한 자기성찰이 아니라 언론 등의 비판에 대한 ‘따져 보기’다. 현 정부 3년에 대한 민간의 평가 활동이 있을 줄 알고 방어 겸 역공의 선수(先手)를 치는 모양새다.

오피니언 시장(市場)이 경제 못지않게 위축되고 있다. 국책연구소는 물론이고 민간연구소 전문가와 교수들도 정부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았다가는 신분상 불이익을 받거나 인신공격을 당하기 일쑤라고 한다. 구(舊)시대 뺨치는 ‘여론 탄압’이다. 그렇다고 지식인들까지 눈 감고 입 닫으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없다. ‘얼굴 좀 붉히더라도’ 터놓고 따져 봐야 할 이유다.

이 정부는 과연 ‘참여정부’가 맞는지부터 따져 볼 일이다. 민의(民意)가 어떤 바람을 타고 조성됐건, 다수 국민이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던 때만은 참여정부 같았다. 그때 말고는 3년의 대부분이 ‘국민불참정부’ 아니던가.

조기숙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따져 보기 시리즈를 ‘여는 글’에서 “정부는 파워 집단으로 등장한 언론의 공격적인 신조어(新造語)와 담론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 예로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코드정권, 아마추어정권, 포퓰리즘, 좌파정부 등을 꼽았다.

조 수석은 언젠가 “대통령은 21세기에, 국민은 20세기에 산다”고 했는데 이는 국민 모독이다. 대통령이 1980년대의 인식에 갇혀 있을 때도 많은 국민은 미래로 달렸다. 정권이 정말 프로답다면 언론이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해도 곧이들을 국민이 아니다. 다른 신조어의 생명력도 결국 국민 속에서 판가름 난다. 설령 모든 국민이 신문은 보지 않고 TV로만 정부 홍보를 접한다고 해도 코드정권, 좌파정부 같은 말은 생겨났을 거다.

노 대통령과 측근들이 실체 없는 자화자찬(自畵自讚)을 하는 것은 민심을 멀어지게 할 뿐이다. 청와대 사람들이 당번 정해 놓은 듯이 대통령 찬가(讚歌)를 부를수록 국민 속에서는 대통령이 희화화(戱畵化)된다.

아무튼 조 수석은 따져 보기 시리즈의 ‘여는 글’을 잘 맺었다. “무조건 나만 옳다, 내가 만족하지 않으면 정답이 아니다, 절충과 타협은 배신이자 굴복이다, 이런 사고(思考)로는 난마같이 얽힌 현안들을 해결할 수 없다.”

동감이다. 대통령부터 솔선해서 이런 신념을 행동으로 보인다면 남은 2년에 지나간 3년간의 국정 왜곡을 적지 않게 바로잡고 국민과의 불화(不和)도 크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백만 국정홍보처 차장은 따져 보기 시리즈의 ‘경제위기론 뚫고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로’라는 글을 썼다. “정부는 경제의 ‘아편’인 인위적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고 경제 체질 강화와 기초 체력 다지기에 매진했다”는 얘기다.

2002년 대선 때 노 후보의 핵심 경제공약 몇 가지만 훑어보자. 연 7% 성장, 빈부격차 해소와 국민 70% 중산층 시대 개막, 세액 공제 확대와 근로자 조세 부담 경감, 집중적 국가채무 관리로 재정 건전성 확보, 정부 산하 각종 위원회 정비를 통한 정부 효율성 제고…. 어쩌면 이렇게 빗나가거나 거꾸로 갈 수 있는가.

연평균 4%도 성장하지 못한 것은 ‘아편 안 쓰고도 달성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마저 갉아먹었다는 뜻이다. 3년간의 저성장, 특히 국내 투자와 소비의 침체는 중산층 붕괴와 빈부격차 확대를 부채질했다.

냉탕에서 화상(火傷) 예방했다고 자랑하는가. 다져진 경제 기초 체력은 도대체 어디 숨어 있나.

이 차장은 “경제는 전반적으로 좋아지는데 양극화가 심각하다. 특히 서민들의 생활이 아직도 아주 어렵다”고 했다. ‘양극화가 심하다’는 말이 맞는다면 ‘경제는 전반적으로 좋아진다’는 말은 안 맞다. ‘부유층과 서민층,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 서울 강남과 강북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맞는다면 경제는 좋아지는 게 아니라 더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정책의 실패’와 무관한 듯이 말하니 국민은 정부를 믿지 못한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