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제도의 최대 맹점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에서 파생되는 ‘재정불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당초 국민연금 제도가 의도했던 복지사회가 달성될 수 없다.
당초 의도했던 복지사회가 달성되기 어려운 이유는 국민연금이 이름과는 달리 국민의 절반 정도만 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연금개혁특위에 참가한 야당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진정한 연금개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체 국민연금 가입 대상자 3명 중 1명은 미가입 상태다.
국민연금제도 이대로 좋은가
특히 봉급생활자를 제외하면 지역가입 대상자 2명 중 1명이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도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자영업자들이다. 하지만 상당수는 연금 부담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순천향대 김용하(金龍夏·금융보험학) 교수는 “국민연금 미가입자의 상당수는 노후에 연금이 꼭 필요하지만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잠재적 빈곤층”이라며 “이들을 빼놓고서는 국민연금제도의 기본 취지 자체가 의미를 잃는다”고 지적했다.
○내고 싶어도 못 내는 사람 있다
국민연금은 한국사회가 초단기 급성장 과정에서 간신히 마련한 복지 시스템이다. 유지시키고 발전시켜야 한다. 하지만 경험 부족과 사회 각계각층의 이해가 충돌하고 있어 해결이 간단치는 않다.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김태철(가명·38·경기 고양시) 씨는 일당이 3만∼6만 원으로 한 달에 버는 돈은 100만 원 남짓. 4인 가족 기준 최저 생계비인 117만422원에 못 미친다. 현행 제도대로 김 씨가 국민연금에 가입한다면 한 달에 8만1000원 정도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김 씨는 “지금 벌이로 네 식구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8만 원을 어떻게 내느냐”고 반문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3년 12월 기준으로 국민연금 가입 대상자는 1688만여 명. 이 가운데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은 1112만여 명(65.8%)이고 나머지는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들 중에는 본인이 선택해 노후를 대비한 사람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스스로를 챙길 수 없는 사람이다.
특히 영세사업자와 비정규직 근로자 대부분은 국민연금에 관심조차 없다.
부산에서 철공소를 운영하는 박세원(가명·39) 씨는 직원 6명을 고용하고 있다.
그는 “직원들이 연금 가입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월급이 120만 원 남짓인데 10만8900원 정도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면 생활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 의도가 당사자들에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비정규직 근로자 548만여 명 가운데 국민연금 가입자는 200만 명 남짓. 가입률은 36%대에 불과하다.
○소득 격차 해소 효과 미미할 수도
복지국가의 국민연금제도가 의도하는 주요 기능 중 하나는 계층 간 소득재분배 효과다.
보통 낸 돈의 2배 안팎을 받고 저소득층은 부담한 돈의 4∼7배를 연금으로 받는다.
그런데도 저소득층의 국민연금 미가입은 늘어나는 추세다. 가장 좋은 노후보장 시스템인데도 불신을 받기 때문이다.
월평균 소득이 176만 원인 A 씨와 80만 원인 B 씨를 비교해 보자. 나이는 같은 40세.
A 씨는 매월 15만8400원을 내고 65세 때부터 48만8660원(현재 가치 기준)을 받는다. 그가 받을 연금은 자신이 낸 돈의 2.35배.
B 씨는 매달 7만1100원을 내고 65세 때부터 34만3160원(현재 가치 기준)을 받는다. B 씨의 연금소득은 낸 돈의 3.29배.
현재 A 씨 소득은 B 씨의 2배를 웃돈다. 다른 소득이 없고 연금을 받을 나이가 되면 A 씨의 소득은 B 씨의 1.4배 정도로 좁혀진다.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효과다. 그러나 B 씨가 생계가 어려워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05년 현재 60세 이상 노령인구 중 국민연금을 받지 않고 있는 비율은 78%. 현행 제도를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40∼50년이 흘러도 노인 3명 중 1명은 국민연금의 울타리 밖에 남게 된다.
이들 중에는 본인이 경제적 능력이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을 무시한 사람도 있고 아예 가입할 능력이 없어서 가입하지 못 한 사람도 있다.
지금처럼 방치하면 사회안전망을 훼손시켜 사회 자체가 불안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국가가 모든 사람을 보살펴 주자면 덜 내고 많이 받아 쌓인 국민연금의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상당수는 빈곤층이어서 자체적인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재정고갈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지원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연금 보험료를 낼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에게 “연금은 최소한의 노후대책”이라는 점을 인식시켜 가입률을 높이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연금이 안고 있는 최대 고민 중 하나다. 이래저래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노인들 “국가가 좀…” 국가 “알아서 좀…”▼
한국의 노인들은 국가에서 얼마나 ‘노후’를 보장해 주고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해 일부 극빈층 노인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혜택을 전혀 못 받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노인들에 대한 지원은 크게 ‘소득 보장’과 ‘일자리 마련’ 등이다.
소득 보장은 △국민연금 △경로연금 △국민기초생활 보장 수급자에 대한 소득 지원 등 3가지.
이 가운데 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젊었을 때 돈을 납입하지 않으면 나이 들어서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구조다. 국가가 직접적으로 노후생활을 보장해 주는 시스템과는 차이가 많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수급권 대상이 되는 60세 이상 노인(전체 약 625만 명) 중 국민연금 수급권자는 유족연금까지 합쳐 135만여 명(약 21.6%)에 불과하다.
경로연금은 이 같은 국민연금의 허점을 메우기 위해 1998년 7월 도입됐다. 1988년 국민연금 도입 당시 가입 요건(60세 미만)에 해당되지 않은 노인(당시 65세 이상)에 대해 한시적으로 노후 소득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그러나 경로연금 지급액은 3만630∼5만 원에 지나지 않아 노후보장 수단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용돈에 불과하다.
이런 열악한 현실에 대한 노인들의 불만은 높다. 과거와 달리 노인들은 가족이나 자녀보다는 국가에 대해 높은 기대수준을 갖고 있다.
2004년 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 생활실태 및 복지욕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상적인 노후생활비 마련 방법’을 묻는 질문에 40.9%가 ‘국가’라고 답변했다.
이 같은 점을 의식해서인지 정치권에서는 노후 보장에 대한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유시민 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제안한 효도연금은 경로연금의 확대판이다. 지원 대상자를 약 60만 명(경로연금)에서 90만 명 정도로 늘리고 지원 금액도 최대 6만 원에서 단계적으로 높여 10만 원 이상 준다는 내용이다.
야당에서는 대부분의 노령인구에게 최소한의 생계비를 지원하는 기초연금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정경배 복지경제연구원장은 “경로연금이나 효도연금은 ‘연금’이란 말만 붙었을 뿐이지 연금이 아니라 공적부조 제도”라며 “연금 개혁과 연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부
반병희 차장 bbhe424@donga.com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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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