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출마가 당선으로 이어진다면 국가 이미지 상승 등 국가적 경사임에 틀림없다. 그가 장관직을 언제까지 수행할지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지만 외교부는 현직을 유지하는 것이 득표 활동에 유리하다고 본다. 청와대가 최근 개각에서 반 장관을 제외한 것도 이를 위한 배려 차원이다.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P5)의 의중이 관건=유엔 사무총장이 되려면 안전보장이사회 P5 가운데 한 나라의 반대도 없어야 한다. 오히려 P5 중 어느 한 나라가 특정 후보를 적극적으로 밀면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게 정설이다. 국제정치 역학에 비춰 P5 중 다른 국가의 견제를 받기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게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은 이 때문에 나온다.
북한 핵문제 등 국제적 현안의 당사국이고 분단국가라는 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아직까지 P5의 동맹국 또는 분쟁 당사국에서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전례는 없다.
역대 유엔 사무총장이 유럽(노르웨이 스웨덴)→아시아(미얀마)→유럽(오스트리아)→남미(페루)→아프리카(이집트 가나)순으로 순환돼 유엔 내에서 ‘이번에는 아시아 차례’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은 호재(好材)다. 비상임이사국인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14일 “이번은 아시아 차례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12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미국과 영국이 동유럽 출신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지역순환’에 부정적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영국은 대체로 미국의 의견에 동조해 왔다. 동유럽에서는 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 라트비아 대통령,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전 폴란드 대통령 등이 거론된다.
중국과 러시아는 “아시아 국가에서 나와야 한다”는 견해만 밝히고 있다. 중국 외교부 류젠차오(劉建超)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아시아 국가 후보가 사무총장에 당선되는 것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프랑스어 구사 능력을 중시하는 등 독자적 성향을 보여 온 프랑스를 의식해 반 장관은 최근 프랑스어 공부에 공을 들여 왔다. 정부 관계자는 “유엔 무대에서 노련한 외교관으로 공인된 반 장관에 대한 평가와 한국의 입지 등을 고려할 때 해 볼 만한 승부”라고 말했다.
▽아시아에서는 고촉통(吳作棟) 전 총리가 다크호스=수라끼앗 사티아라타이 태국 부총리와 스리랑카의 자얀타 다나팔라 전 유엔 사무차장이 이미 출마를 선언했다. 수라끼앗 부총리는 일찌감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의 공식 지지를 받으며 앞서 나갔으나 최근 국내외에서 부정적 기류가 높아지며 기세가 꺾였다.
국제사회에서 지명도가 높은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도 다크호스로 꼽힌다. 미국을 방문 중인 손학규(孫鶴圭) 경기도지사는 13일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와 오찬을 했는데 그가 ‘고 전 총리만 나오지 않으면 반 장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정부는 ‘아세안 대표’가 고 전 총리로 교체될 경우 버거운 상대가 될 것으로 보고 아세안 측의 지지를 모색하는 방법을 강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핵 해결에 긍정적 역할 기대=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면 특정 국가에 편중됐던 한국 외교의 지평이 다자주의로 영역을 넓히면서 외교 역량을 신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변화를 주도해 갈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반 장관도 14일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는 경우 북핵 문제의 평화적 조기 해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 장관이 당선되더라도 한국에 유리한 활동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유엔 사무총장은 출신 국가의 이익을 떠나 세계 평화를 위해 공헌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또 유엔 사무총장 선출을 전후해 밀린 유엔 분담금 납부와 후진국 지원금 규모 확대의 압력을 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