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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파워그룹 그들이 온다]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들

입력 | 2006-02-16 02:59:00

‘예종 파워’의 원천은 실기 위주의 커리큘럼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 음악원의 수업 장면. 사진 제공 한국예술종합학교


《문화예술계의 공고했던 ‘권력지도’에 변화의 싹이 자라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예종)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각 분야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예종은 ‘예술 영재 양성’을 목표로 1993년 설립된 공교육 기관. 음악원을 필두로 연극원, 영상원, 무용원, 미술원, 전통예술원이 차례로 생겨 총 6개 원을 갖추고 있다. 예종 출신들이 크고 작은 국내외 콩쿠르를 휩쓸면서 분야마다 ‘예종 파워’가 거세지자 문화계에서는 “예종이 설립 10년을 넘기면서 ‘결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며 주목하고 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그동안 세칭 간판 대학 출신 여부, 사제관계로 맺어진 인맥 등이 파워엘리트 그룹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런 풍토에서 예종 출신의 약진은 재능과 실력만으로 승부하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 문화예술계 곳곳에 부는 ‘예종 돌풍’

9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올해 국립발레단에 유일하게 입단한 발레리나 김리회(19·예종 무용원 3년·아래 사진).

새내기 단원인 그는 지난달 불과 입단 사흘 만에 국립발레단의 ‘스페셜 발레 갈라’의 개막 첫 무대를 장식하며 ‘주역’으로 데뷔했다. 현재 국립발레단의 주역급 무용수 13명 중 11명이 예종 출신이다. 그뿐만 아니다. 한상이(모나코 발레단) 류서연(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안효진(독일 드레스덴 발레단) 김수진(벨로루시 발레단) 등 일찌감치 해외로 진출한 예종 출신 무용수도 많다.

음악에서도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클라라 하스킬 국제 콩쿠르에서 1등을 하는 등 작년 한 해 동안 예종 음악원 출신 10명이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예종 스스로도 ‘개교 이후 13년의 성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예술인력 양성’을 첫손가락에 꼽는다.

김혜식(무용원) 교수는 “역사가 10년밖에 안 된 무용원이 2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프랑스 파리 컨서버토리, 리옹 컨서버토리 같은 세계적인 교육기관과 교류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그만큼 좋은 성적을 낸 덕분”이라고 말했다. 공연의 메카인 대학로에서도 예종은 공연기획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집단이다. 대학로의 프로 기획자나 투자자들이 좋은 작품을 ‘선점’하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아마추어인 예종 학생들의 졸업 워크숍 공연을 보러 갈 정도다. 연극원 무용원 음악원 출신이 뭉쳐서 만든 극단 ‘공연배달서비스-간다’의 첫 작품인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는 지난해 밀양연극제에서 대상, 연출상, 여자 연기상을 휩쓸었다.

영상원은 ‘영화 아카데미’와 함께 충무로 인력의 양대 산맥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각종 영화제와 공모전 수상자는 32명, 국내외 영화제 초청작품도 45편에 이른다.

○ 실기 중심, 현장 위주의 교육

예종의 힘은 철저한 실기와 전공 훈련에서 나온다. 예종 출신 무용수들은 “예종에서 한 학기에 받는 레슨의 질과 양은 다른 대학에서 4년 동안 배우는 것과 비슷할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한 연극원 졸업생은 “일주일에 실기가 30시간이나 되다 보니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많다. 이렇게 학교에서 훈련을 시켜 준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영상원의 커리큘럼도 독특하다. ‘한국 근현대사의 이해’ ‘현대사회와 철학’ 등 영상전공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인문학 개론도 필수과목이다. 영상원생 중에는 의사 변호사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많다. 현재 재학생 중 다른 대학을 마치거나 중퇴한 사람이 40%에 이른다. 미대를 다니다 영상원으로 옮긴 김보라(22) 씨는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했던 사람들과 어울려 영화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고민한다는 게 가장 좋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미술원은 ‘기존 미술 교육의 틀을 뒤집는 대안 제시’가 목적인 만큼 교육 방식도 다르다. 개원 당시 다른 미대 입시에서 으레 하는 석고 데생 대신 시험관이 염소 한 마리를 시험장에 데리고 들어와 그리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 영재 발굴하는 ‘예비학교’

전문가들은 예능 분야는 어릴 때 재능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 점에서 예술 영재를 위해 예종이 마련한 ‘예비학교’는 예종 파워의 원천이다.

홍승찬(무용원) 교수는 “예종이 성공을 거둔 것은 좋은 커리큘럼으로 잘 가르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재능이 뛰어난 좋은 학생을 미리 발굴할 수 있었던 점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예종은 1994년부터 음악원을 필두로 ‘예비학교’를 운영해 왔다. 예술 영재들이 다니는 예비학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교 2학년까지의 학생들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다.

강충모 교수는 “피아니스트 임동민-동혁 형제와 손열음, 첼리스트 고봉인 등 해외 주요 콩쿠르에서 입상한 스타급 연주자들은 대부분 예비학교 출신”이라며 “특히 음악과 무용 분야에서 예비학교의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예종 파워’의 또 다른 원천은 나이에 관계없이 재능만 있으면 적극적으로 불러들이는 입학 시스템이다. 예종은 중3∼고2까지의 학생 중에서도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면 별도로 선발한다. 예종의 예술사 과정은 일반대학 학사과정에 해당하기 때문에 빠르면 16세(중3년)부터 대학 교육을 받는 셈. 이런 방식으로 연간 10∼15명이 예종에 입학하고 있다. 이건용 예종 총장은 “지난 10년이 예종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빈 아카데미나 로열 아카데미처럼 세계적인 교육기관과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및 졸업생의 주요 수상 실적연도참가
대회입상자주요 수상 실적1996817-삼익콩쿠르 1위19971428-기타큐슈&아시아홀 댄스콩쿠르 1, 3위
-ISCM 세계음악제 작곡부문 입선19982032-제6회 팬뮤직페스티벌 작곡 입선
-난파콩쿠르 작곡 최우수상19993961-독일 노이어 스팀먼 콩쿠르 성악특별상
-시즈오카 국제 오페라 콩쿠르 성악 2위

20004391-베르디 국제콩쿠르 성악 1위
-워싱턴 국제콩쿠르 바이올린 1위
-스트라드 콩쿠르 바이올린 1, 2위
-난파콩쿠르 성악 1위20014790-포스타치니 국제바이올린 콩쿠르 1위
-이프라 니만 국제콩쿠르 바이올린 2위
-펜데레츠키 국제콩쿠르 전체 그랑프리
-영화진흥위원회 우수논문공모 최우수상20024578-메뉴인 국제바이올린 콩쿠르 1위
-미장센 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200377115-쾰른 콩쿠르 바이올린1위
-스트라드 콩쿠르 바이올린 1위
-나고야 국제음악콩쿠르 피아노 1위200491203-파가니니 국제콩쿠르 바이올린 1위 없는 3위
-칸영화제 감독주간 공식 초청
-밴쿠버 국제영화제 용호상 부문200566104-이프라 니만 국제콩쿠르 바이올린 1위, 청중상
-시옹 발레국제음악페스티벌 1위, 최연소상
-창비신인소설가상
-세계사물놀이겨루기 한마당 대통령상

▼예종은 ‘스타의 요람’▼

요즘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스타 산실’로 불린다.

음악 쪽에는 재학생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을 비롯해 피아니스트 김선욱 한상이,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 등이 예종 출신이다. 지난해 세계 최고 권위의 피아노 콩쿠르인 쇼팽 콩쿠르에서 공동 3위에 입상한 임동민-동혁 형제와 첼리스트 고봉인은 ‘예비학교’ 출신.

‘50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부적인 발레리노’라는 평을 듣는 김현웅을 비롯해 장운규 이원철(이상 국립발레단), 발레리나 황혜민(유니버설발레단)은 무용원이 배출한 스타.

연극에서는 지난해 한국뮤지컬 대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오만석과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자이자 원작 연극 ‘이’의 연출가인 김태웅 등을 꼽을 수 있다. 단편소설집 ‘달려라 아비’로 지난해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작가 김애란은 연극원의 극작과 출신이다.

영상원 출신 영화감독으로는 조의석(‘일단 뛰어’) 정재은(‘고양이를 부탁해’) 윤재연(‘여고괴담3’) 이언희(‘…ing’) 등을 꼽을 수 있다. 미술에서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참가 작가인 문성식 옥정호 등이 있다.

예종은 교수진도 화려하다. 김남윤 김대진 김영미 민경찬(이상 음악원), 김혜식 김현자 안성수(이상 무용원), 김윤철 김영하 김태웅 윤대성 이상우 최준호(이상 연극원), 김성수 박광수 박종원(이상 감독) 씨 등 현장 경험이 풍부한 각 분야의 ‘스타플레이어’들이 예종 강단에 서고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