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제시한 기초연금제는 무책임한 안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재정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안으로 개혁만 지연시키고 있다.”(국회 국민연금제도개선특위 열린우리당 간사 이기우·李基宇 의원)
“사각지대 등 연금제도 전체가 부실한데 재정문제만 약간 손질하려는 정부 여당 안은 일단 지금 순간만 넘기자는 땜질 처방이다. 이번에는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손질할 수 있는 전면 개혁안이 나와야 한다.”(특위 한나라당 간사 윤건영·尹建永 의원)
정부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에 넘어간 지 거의 2년 반 동안 여야는 견해차를 전혀 좁히지 못하고 있다. ‘폭탄 돌리기’ 식으로 개혁을 미루는 사이 자식 세대의 짐만 매일 800억 원씩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는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접어들어 자칫 연금개혁안이 정쟁의 도구가 될 소지가 크다”면서 “올해 안에 큰 틀에서라도 합의를 보지 않으면 연금 개혁은 더 어려워진다”고 진단했다.》
○ 정치권은 그동안 뭘 했나
그동안 정치권이 보인 행보를 보면 국민연금을 개혁할 의사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정부가 개정안을 국회에 처음 제출한 것은 16대 국회 때인 2003년 10월.
2004년 10월과 12월에 당시 열린우리당 유시민(柳時敏) 의원과 한나라당도 각각 개정안을 냈다. 이후 몇 차례 법안 심사소위가 열렸으나 여야의 견해차가 워낙 커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정치권은 2005년 10월 국민연금제도개선특위를 구성해 본격 논의하기로 하고 지금까지 3차례 회의를 열었다.
1차 회의는 2005년 11월 16일 위원장만 정하고 43분 만에 해산했다. 같은 해 11월 29일 2차 회의에서도 소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하고 56분 만에 끝났다. 올해 2월 13일 3차 회의도 소위원회만 구성한 뒤 25분 만에 끝났다.
3차례 열린 특위 회의시간은 인사말을 하는 시간을 합쳐 2시간에 불과하다. 2년 4개월 동안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 동상이몽인 여야
정부가 2003년 10월 국회에 넘긴 개정안은 재정안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40년 가입했을 경우 매달 소득의 9%를 내면 나중에 평생 평균 소득의 60%를 받는 현행 제도를 ‘더 내고 덜 받는’ 방안으로 고친 것.
보험료는 2010년부터 단계적으로 올리기 시작해 2030년에는 15.9%에 이르도록 했다. 보험급여는 2007년까지는 55%로 낮췄다가 2008년부터 50%로 내리도록 했다.
열린우리당에는 아직 확정된 당론이 없지만 정부안과 유사하고 다만 보험료는 올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윤건영 의원은 “정부 여당 안은 자영업자의 절반 가까이가 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기에 상당히 미흡한 미봉책”이라고 비판했다.
또 기금 고갈의 시점을 2070년으로 미룰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한나라당 개혁안의 핵심은 기초연금제 도입이다. 한나라당안은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의 2층 구조를 택하고 있다.
기초연금이란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과 일정 조건의 모든 장애인에게 매달 31만 원(전체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의 20%)을 지급하자는 것. 이렇게 되면 돈이 없어서 가입하지 못하는 국민연금 사각지대 문제는 해소된다. 소득비례연금은 소득 재분배 기능이 없이 가입자가 낸 만큼 받아가는 방식이어서 형평성 논란도 사라진다.
반면 이 같은 기초연금제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보건복지부는 당장 시행 첫해 8조 원 이상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의 추산은 2조3000억 원가량.
이기우 의원은 “기초연금제를 실시하려면 현실적인 재원 마련 방안을 함께 내놓아야 하는데 야당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앞으로 어떻게 되나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15일 “올해 안에 국민연금 개혁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는 그의 말을 믿지 않고 있다. 개정안을 통과시키려면 여야의 절충이 불가피한데 그렇게 하기에는 양측의 견해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본보가 연구기관 담당자 등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국민연금 개혁이 현실적으로 언제쯤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24명 가운데 “금년 이내”라고 답한 사람은 33.3%(8명)에 그쳤다. 나머지 66.7%(16명)는 “올해 안에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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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재정안정 위해 보험료 올려야”▼
연금제도는 경제 사회적 상황에 따라 나라마다 크게 다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연금제도 개선 방안도 정답이 없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은행 등의 연금제도 개선 권고안을 보면 공통된 원칙이 있다.
OECD와 세계은행은 노후 보장의 수준에 따라 연금을 3단계로 나눈다.
이들 기관은 1단계로 기초연금을 제시한다. 이는 국가가 세금으로 재원을 조달해 전 국민에게 같은 금액을 연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기초연금의 소득대체율은 20%. 연금 가입 기간 중 평균 소득의 20%를 노후에 연금으로 받는다는 뜻이다.
2단계는 기업연금 직역연금(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 등이다. 한국이 작년 12월 도입한 퇴직연금처럼 근로 기간 중 개인과 기업(기관)이 돈을 적립해 노후에 지급하는 제도다.
기초연금과 마찬가지로 전 국민 강제 가입이 원칙이어서 공적 연금의 성격을 띠고 있다. 역시 소득대체율은 20%다. 1단계 기초연금과 합치면 소득대체율은 40%로 높아진다.
3단계는 개인연금이다. 말 그대로 개인이 선택해 민간 보험회사 등에 가입하는 연금이다.
OECD는 개인연금의 적정 소득대체율을 20%로 제시한다. 개인연금제도가 활성화하면 다수의 국민이 노후에 60%(1∼3단계 합계)의 소득대체율을 적용받는다.
그러나 OECD와 세계은행의 권고안을 받아들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기초연금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재정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OECD는 3단계 기본 골격과는 별도로 한국에 몇 가지 사항을 권고하고 있다.
OECD는 ‘2005년 한국경제검토회의 보고서’에서 한국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을 강조했다.
이 보고서는 우선 재정 안정을 위해 보험료 인상을 권했다.
또 장기적으로 기초연금이 바람직하지만 이 제도를 시행하기 전까지는 경로연금 등 고령 빈곤층에 대한 공적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초연금을 도입하더라도 고소득자에게는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안도 제시됐다.
전 국민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면서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인 사람에게는 기초연금만큼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방안이다.
지난해 OECD 한국경제검토회의에 참석했던 국민연금연구원 윤석명(尹錫明) 연구위원은 “OECD 권고안의 핵심은 재정 여건을 감안한 개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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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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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