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트막한 산은 발로 오른다. 그러나 8000m급 히말라야는 발만으로는 안 된다. 등반대장의 ‘머리’와 대원들의 ‘팀워크’가 없으면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설산(雪山) 꼭대기에 설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을 정상에 올려 보내기 위해,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은 훨씬 많다. 장비 식량 통신 의료 기록 담당자 등이 그들이다. 등반대장은 원정을 떠나기 전 최소한 6개월은 준비해야 한다. 원정비용 마련, 대원 구성, 행정수속 등 할 일이 산처럼 많다. 베이스캠프에선 적어도 2개월 이상 생활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대원들은 싫증과 짜증이 나고 자연히 팀은 느슨해진다.
결국 히말라야 등정은 등반대장의 리더십이 열쇠다. 리더십은 한마디로 ‘사람 관리’라 할 수 있다. 대원들을 잘 관리해야 ‘팀워크’가 단단해진다. 그래서 대장은 흔들리면 안 된다. 태산과 같아야 한다. 대장이 흔들리면 대원들도 흔들린다. 그러려면 대장은 솔선수범해야 하고 대원들에게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 대장은 책임지는 사람이고 결정하는 사람이다. 히말라야에선 10초 이내에 ‘예스’인지 ‘노’인지 말해야 하는 상황이 수없이 많다. 이럴 때 의사 결정을 미루는 리더는 대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
한국엔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를 모두 오른 사나이가 세계 13명 중(1월 말 현재) 3명이나 된다. 엄홍길(46) 박영석(43) 한왕용(40) 씨가 그 주인공이다. 최근 이들의 리더십이 주목을 받고 있다. 정상으로 가는 코스가 각각 다르듯 이들의 리더십도 저마다 독특하다.
엄홍길은 보통 땐 수더분하고 부드럽다. 하지만 히말라야 땅에 들어서는 순간 독재자가 된다. 칼 같다.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작은 것 하나가 대원들의 생명을 좌우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엄홍길은 말한다. “산에서는 산꾼이 주인이다. 산에서 강해야 진짜 강하다. 모든 것은 산에서 평가된다. 모든 계급장도 뗀다. 동행하는 교수 기자 의사도 모두 필요 없다. 서울에는 서울의 질서가 있고, 히말라야에는 히말라야의 질서가 있다.”
박영석은 대원들의 사기를 최우선으로 한다. 히말라야를 가든, 남극 북극을 가든 그는 늘 한결같다. 그는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준다. 모든 걸 다 내놓는다. 그는 “대장이 영혼까지 다 줘버리는 데 어느 대원이 안 따라 오겠는가”라고 말한다. 그는 대원들의 사기가 떨어졌다 싶으면 과감히 하루 이틀 쉬면서 기분을 새롭게 하고 출발한다. 때론 돼지도 잡고, 때론 몰래 숨겨뒀던 먹을거리를 슬며시 꺼내놓는다. 대원들 생일 챙기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한왕용은 “난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는 늘 이런 식이다. 때론 대장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는 대원들과 함께 뒹군다. 늘 친구처럼 편안하고 따뜻하게 대한다. 스스로 “난 카리스마가 없다”며 싱겁게 웃기도 한다. 2000년 K2 등정 때는 산소통이 고장난 선배에게 자신의 것을 양보하고 무산소로 올랐을 정도다. 그는 그 후유증으로 귀국 후 세 차례나 뇌혈관 수술을 받았다. 그래서 대원들은 그를 철석같이 믿는다.
이들은 하나같이 단순 명쾌하고 솔선수범한다. 모두 겸손하다. 히말라야 14좌 완등 성공은 ‘산이 잠시 허락하여 이룬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서울에 돌아오면 한없이 몸을 낮추고 심지어 수줍어하기도 한다. 엄홍길은 1985년부터 28번 도전 끝에 14번 성공했다. 대원도 10명이나 잃었다. 박영석은 1991년부터 31번이나 도전(18번 성공)하며 대원 7명을 잃었다. 한왕용은 1993년부터 19번 시도(5번 실패) 끝에 성공했다. 다른 등반대에 대원자격으로 참가해 오른 적도 많다. 다행히 그가 대장으로 팀을 이끌고 등반했을 땐 동료를 잃지 않았다.
마침 엄홍길은 해군 수중폭파반(UDT), 박영석은 공군, 한왕용은 육군 출신이다. 군대갔다 온 것도 그들 리더십을 빼닮았다. 엄홍길은 잡초 같고, 박영석은 우아하고, 한왕용은 현실적이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