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펀드들의 이익 챙기기 공세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외국인이 챙겨 간 현금 배당이 최근 2년 동안 3배로 늘어났는데도 부동산과 자회사 주식을 모두 팔아 내놓으라는 요구까지 등장하고 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업무는 놔둔 채 배당 튀기기 선물 보따리를 들고 외국인 주주를 찾아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
국제적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 씨는 KT&G 공격의 목표가 이익 더 챙기기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 외국 자본이 재벌의 독단적 지배구조를 개선하려고 상륙한 십자군이라는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은 이제 주워 담을 때가 됐다. 해외 펀드의 공세에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삼성전자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은 없다는 무책임한 주장도 마찬가지다. 6·25전쟁 당시 서울 방어가 문제없다던 녹음 방송이 떠오른다.
대형 은행과 공기업 주식을 쫓기듯이 매물로 내놓으면서도 국내 자본 중 매수 세력이 있는지는 살피지 못했다. 그나마 자금 여력이 있는 기업들도 출자총액제한, 금융-산업 분리, 부채비율 200% 등 자학적 족쇄를 채워 가둬 놓은 사이에 외국계 펀드가 우량 주식을 쓸어 담았다.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도 일부에서는 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을 소급 개정해 주식 처분 명령을 내리자는 둥, 순환 출자를 금지해 주식을 내놓게 하자는 둥 한가한 노래를 계속 부르고 있다.
기업퇴직연금제도가 없었던 것도 해외 펀드 독식의 배경이 됐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기업연금이 자기 회사 주식을 대량 보유해 그 배당금으로 퇴직자들에게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노후생활도 기업이 책임지는 기업 중심의 사회가 형성돼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연금을 도입하면서도 국가가 모든 국민의 노후를 보장한다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정했다. 따라서 기업퇴직연금은 고려하지 않고 근로기준법상 일시퇴직금제도를 그대로 존치했다. 정부는 공공연히 2047년에는 연금 재원이 고갈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애꿎은 근로자들만 꼬박꼬박 월급에서 보험료를 원천징수 당하고 있으나 자영업자나 저소득계층의 체납률이 34%에 이르고 있어 근본적 개혁 없이는 파탄이 예고돼 있다.
개발 붐이 한창이던 1920년대 미국의 플로리다에서 찰스 폰지는 주택투자사업을 한다며 투자자를 모았다. 허황한 수익을 제시하며 뒤에 들어오는 투자자의 원금으로 앞사람의 이익을 챙겨 주는 방식. 3년간 이어지던 사기극이 들통 났을 때 폰지의 통장엔 투자 자금의 14%밖에 없었다. 국민연금은 뒷사람에게서 받은 원금을 앞사람에게 지급하는 ‘폰지 사기’의 전형이다.
연금개혁은 기업 책임과 정부 책임을 나누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업 근로자들은 본인 부담과 회사 부담을 합하여 기업퇴직연금에 가입하도록 하고, 이는 기업 책임으로 꾸려 가도록 해야 한다. 기업퇴직연금이 정부 지원 없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신주발행 시 할인 가격으로 우선 배정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자사주도 구입 당시의 낮은 원가로 인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단시일 내에 충분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래 일정 기간의 퇴직연금보험료를 회사가 선납하여 충분한 기금을 미리 확보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종전의 우리사주제도와는 달리 퇴직연금은 중도에 주식 처분이 불가능해 안정적인 지분 구조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또 자신의 노후 연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종업원들이 회사 이익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할 것이고 불필요한 노사 대립에 의한 손실도 줄일 수 있게 된다.
소득이 있는 자영업자는 연금운영기관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밖의 보호 대상 저소득층은 정부 재원 위주의 국민연금이 보호해야 한다. 이미 지급 의무가 발생한 연금 부족분은 정확히 추계해 상당 기간 추가 적립해야 한다. 금융기관 특별기여금과 재정출연금으로 25년간 상환하도록 한 공적자금의 경우를 참조할 만하다. 저소득층 연금 재원을 위해서는 복권 수익, 카지노 수익, 담배의 건강진흥부담금 등 정부 부처들이 방만하게 사용하고 있는 기금을 통합해 사회보장세로 활용할 수 있다.
연금 개혁과 해외 펀드의 우량주 독식 해소는 시급한 과제이다. 시장 질서를 유지하면서 이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안은 기업퇴직연금이다. 기업퇴직연금을 통해 국민의 노후생활도 기업이 주도적으로 책임지는 기업 중심의 사회가 정착돼야 한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