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지하 ‘황금의 방’으로 통하는 유일한 입구. 문이 닫히면 공기도 통하지 않을 만큼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하루 전에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사진 제공 뉴욕 연방준비은행
미국 뉴욕 시 맨해튼 리버티 가(街) 33번지.
뉴욕 연방준비은행(FRB)이 있는 곳이다. 지하에 세계 최대 규모의 금괴 보관소가 있는 곳. 영화 ‘다이하드3’에서 범인(제러미 아이언스)이 뉴욕 일대에 폭발물을 설치해 경찰들을 혼란에 빠뜨린 뒤 이곳 지하에 보관된 금괴를 훔쳐 가는 장면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15일 현장을 방문했다. 마치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금본위제가 부활한 듯 금값이 폭등하면서 뉴욕 FRB의 지하 금괴 보관소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뉴욕연방준비은행. 공종식 기자
‘황금의 방’을 방문하는 과정은 예상했던 대로 복잡했다. 은행 입구의 보안검색대는 9·11테러 이후 강화된 미국 공항의 보안검색대를 방불케 했다.
검색대를 통과하자 안내 담당 직원은 카메라,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취재 수첩과 펜까지 로커에 두고 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취재 내용을 어떻게 메모하느냐”고 항의했지만, 직원은 “지하 구조를 스케치할 우려가 있어 허용할 수 없다. 필요한 내용은 암기해 달라”며 양해를 구했다.
실제로 ‘다이하드3’ 제작진이 영화 촬영을 앞두고 촬영 세트를 만들기 위해 지하 구조를 스케치하다 들켜 메모지를 압수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금괴 보관소 구조는 실제와 다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5층, 지하 24m에 있는 금괴 보관소로 향했다. 압력 차이로 갑자기 귀가 멍했다.
황금창고. 공종식 기자
황금창고. 공종식 기자
▼특등사수들 24시간 ‘황금의 방’ 지켜▼
금괴 보관소로 통하는 입구는 단 하나였다. 강철과 콘크리트로 제작한 좁은 입구를 통과하자 갑자기 ‘누런 금 냄새’가 진동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하실은 온통 ‘황금의 방’이었다. 반짝이는 황금 벽돌을 쌓아 놓은 듯한 방이 사람들을 압도했다. ‘황금의 방’은 모두 122개. 갑자기 금에 대한 감각이 없어지고, 벽돌공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곳에 보관 중인 금괴의 시가는 지난해 900억 달러에서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금값 폭등으로 1000억 달러(약 100조 원)를 넘어섰다. 무게로는 약 5700t, 2t 트럭 2800대분이 넘는다.
황금창고. 공종식 기자
금괴의 주인은 대부분 외국 중앙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 금융기관들. 이들의 비중이 95%이고, 나머지는 미국 정부 소유다. 미국 정부는 자국 보유 금괴를 켄터키 주 군부대 등 여러 곳에 나눠 보관하고 있다.
외국 중앙은행들이 뉴욕 FRB를 선호하는 것은 최첨단 보안 시스템을 자랑하는 데다 대규모 금괴 거래가 대부분 뉴욕에서 이뤄지기 때문. 금괴를 맡긴 국가는 총 36개국. 그러나 구체적인 국가명은 비밀이다. 1979년 이란에서 미 대사관 인질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란 소유 금괴가 동결 조치되면서 알려졌던 게 전부.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지하로 통하는 모든 철제문을 몇 초 만에 봉쇄할 수 있다. 게다가 최고의 사격 솜씨를 자랑하는 보안요원들이 무장한 채 24시간 물샐틈없이 지키고 있다.
금괴 보관소 열쇠는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몇 사람이 모여 퍼즐 맞추듯 짜 맞춰야 열린다. 금이 왜 달러 유로 엔화에 이어 ‘제4의 통화’로 불리는지 실감한 순간이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