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남산. 태조 이성계가 수도를 한양으로 정한 이후 남산은 항상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남산 북쪽에 위치한 신갈나무 군집은 보전가치가 높은 생태 중 하나다. 생태가 우수해 서울시는 창덕궁 후원 및 종묘의 갈참나무 군집, 삼육대의 서어나무 군집 등과 더불어 남산의 신갈나무 군집을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16일 오후 남산. 30여 년간의 폐쇄 조치로 인적이 끊어진 옛 등산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새 단장을 마친 N서울타워가 올려다보였다. N서울타워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남산 한옥마을과 창덕궁, 청와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남산의 정북 방향에 서 있는 것이다.
5분 정도 걸어 들어갔을까. 생명을 다하고 쓰러진 아까시나무 한 그루가 길을 가로막았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황폐화된 남산에 대규모로 심어진 아까시나무는 30년쯤 지나면 도태된다고 한다. 아까시나무의 뿌리에 사는 미생물의 작용으로 토질이 개선된 뒤 참나무 등이 자라나 햇빛을 가리면 옆으로 뿌리를 내린 아까시나무가 결국 스스로 넘어진다는 것. 제 역할을 다하고 퇴장하는 나무의 모습이 사람의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싶었다.
옛 등산로를 벗어나 산 속으로 10분쯤 들어가자 취재진이 찾던 신갈나무 군집이 펼쳐졌다. 나무껍질이 검은빛을 띤 갈색이고 세로로 갈라지는 게 참나뭇과에 속하는 신갈나무의 특징. 높이가 30m는 족히 돼 보였다. 잠시 주위를 둘러본 오충현(吳忠鉉) 동국대 교수는 “순림(純林·같은 종류의 나무로만 이루어진 숲)에 가깝다”며 감탄했다.
감탄도 잠시. 숲 곳곳의 나무들에서 맹아(萌芽·새로 튼 싹)들이 목격됐다. 사람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피부 상태가 나빠지듯이 나무도 생존의 위협을 느낄 때 종족보존을 위해 맹아가 싹튼다. 남산도 환경오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인 셈이다. 특히 토양의 산성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오 교수는 우려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