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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입력 | 2006-02-20 03:02:00

그림 박순철


“진성(陳城) 아래 싸움에서 한군이 마침내 초군을 무찔렀습니다. 항우가 몸소 앞장서 용맹을 떨쳤으나 한나라 장수들이 모두 달려 나와 그 돌진을 막아냈다고 합니다. 특히 관영과 조참은 기우는 전세를 역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달아나는 초군을 뒤쫓아 적지 않은 장졸들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팽월은 그 말을 얼른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사람을 풀어 자세히 알아보게 하고 있는데, 제왕(齊王) 전횡(田橫)이 찾아왔다. 전횡은 한신에게 제나라를 빼앗긴 뒤로 따르는 무리 수천과 더불어 팽월의 군중(軍中)에서 식객 아닌 식객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이제 상국(相國)과 작별할 때가 된 듯하오. 그러나 막상 떠나려 하니 그동안의 두터운 보살핌을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소.”

전횡이 무거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말이라 팽월이 놀란 눈길로 물었다.

“제왕께서는 그 무슨 말씀이오? 가신다니 어디로 가신다는 말씀이오?”

“과인도 들었소. 드디어 한왕이 혼자 힘으로 항우를 꺾었다지요? 그렇다면 상국도 이제 더는 한왕의 부름에 따르기를 미룰 수 없을 것이오. 더 늦기 전에 대군을 모아 한왕에게로 달려가도록 하시오. 과인은 산동(山東)의 지사(志士)들과 더불어 동해 바닷가로 숨으려 하오.”

그제야 팽월은 전횡이 왜 그러는지 짐작이 갔다. 그러나 아직도 궁금한 게 남아 있어 그것부터 먼저 물었다.

“더 늦기 전에라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오?”

“이 소문이 귀에 들어가면 한신은 틀림없이 대군을 이끌고 길을 재촉해 한왕에게로 달려갈 것이오. 그때 만일 상국이 한신보다 늦으면 틀림없이 한왕의 의심을 사리다. 그리하여 한왕과 한신이 항우을 이기고 나면 그 다음은 누구보다 먼저 상국을 칠 것이오. 만일 상국이 홀로 힘으로 그들을 당해 낼 수 있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하루라도 빨리 한왕에게로 달려가도록 하시오. 늦기 전에 한왕의 믿음을 사서 그가 약조한 땅과 왕위를 상국의 것으로 굳히도록 하시오.”

전횡이 담담한 얼굴로 그렇게 일러 주었다. 팽월이 그 말을 못 알아들을 사람이 아니었다. 가벼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어두운 표정으로 전횡의 말을 받았다.

“이 늙은이가 한왕에게로 갈 때는 제왕도 당연히 함께 가는 것으로 알았소. 한왕은 너그러운 사람이오. 거기다가 제왕이 맞선 것은 군왕의 뜻을 어기고 갑자기 군사를 낸 한신이지 한왕이 아니지 않소? 차라리 제왕도 나와 함께 한왕에게로 갑시다.”

“설령 한왕이 과인을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해도 한신은 어찌할 것이오? 그는 여전히 한왕의 으뜸가는 공신이니, 그와 나란히 서서 한왕을 받드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이겠소? 거기다가 대장군 역상((력,역)商)도 있소. 그 형 역이기를 가마솥에 삶아 죽여 놓고 어찌 한 주인을 섬기며 살기를 바라겠소? 차라리 동해 바닷가로 가 숨느니만 못할 것이오.”

“옛말에 이르기를 ‘하늘 아래 땅치고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있으랴[보천지하 막비왕토]’라 하였으니, 만일 천하가 한왕에게로 돌아간다면 동해 바닷가에 숨는다 해서 그 다스림을 피할 수 있겠소?”

팽월이 그런 말로 전횡을 넌지시 붙잡아 보았다. 하지만 전횡은 이미 뜻을 굳힌 듯했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