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서어나무 숲을 도시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서울 노원구 불암산 남쪽 자락 삼육대 천연림에는 다양한 크기의 서어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이곳은 대학 안에 있기 때문인지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삼육대 총장 관사 옆 오솔길을 따라가면 ‘제명호’라는 호수가 나온다. 그 뒤로 숲이 병풍처럼 호수를 감싸고 있었다. 사포로 다듬은 듯한 서어나무는 제법 맵시가 있다. 진회색의 탄탄한 기둥은 코끼리 다리처럼 튼튼해 보인다. 표피 호흡을 하느라 숨통을 튼 자국이 나무에 세로로 길게 남아 있었다.
겨울 숲은 바닥만 보고 걸어도 인근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 알 수 있다. 가지런히 내려앉은 낙엽 때문이다. 손바닥 크기의 신갈나무 잎은 밟으면 바스락거리며 제법 큰 소리를 낸다. 서어나무 잎은 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서어나무 잎은 사르륵거리는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않는다.
서울 노원구 삼육대 숲은 2∼15m까지 다양한 크기의 서어나무가 섞여 있어 건강한 숲의 전형을 보여준다. 토양이 비옥한 경사지로 갈수록 서어나무가 모여 자란다. 사진 제공 서울시
경사가 급한 지역으로 가면 서어나무 천지다. 경사지는 산 윗자락에서 양분이 섞인 물이 내려와 토양이 비옥하기 때문이다.
서어나무는 햇볕이 들지 않아도 잘 자란다. 서어나무의 무성한 잎에 가려 소나무는 도태되고 만다. 동국대 오충현(吳忠鉉·산림자원학) 교수는 “토지가 비옥해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식생이 서서히 소나무에서 신갈나무로, 그리고 서어나무로 바뀐다”고 말했다.
삼육대를 둘러싼 숲 12만5000여 m²(3만7800여 평) 가운데 11% 정도에 서어나무만 자라고 있다.
키가 1∼3m 되는 어린 서어나무들이 숲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시대에는 태릉(조선 11대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의 능)이 근처에 있어 산지기의 감시를, 광복 이후에는 대학 측의 보호를 받았다. 오 교수는 “크고 작은 나무가 다양하게 섞여 있어야 미래가 있는 숲”이라며 “이 점 때문에 삼육대 숲이 보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 화랑대역 1번 출구로 나가 202, 1155, 1156, 1225번 버스를 이용하면 10분 거리. 02-3399-3636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