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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입력 | 2006-02-21 03:03:00

그림 박순철


“동해 바닷가로 나가면 관부(官府)의 손이 닿지 않는 이름 없는 섬이 많이 있다 하오. 뜻 맞는 이들 몇과 그곳에 조용히 숨어 살면 이 한 몸 곱게 늙어죽을 수는 있을 것이오.”

제왕(齊王) 전횡이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그렇게 말을 받더니 갑자기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상국에게 당부할 일이 하나 있소. 들어주시겠소?”

“무엇이든 말씀하시오.”

팽월이 그렇게 받자 전횡이 눈시울까지 붉히며 말했다.

“지난해 과인이 상국께로 의탁해 올 때 과인을 따라온 제나라 장졸이 1만에 가까웠소. 그러나 이제 과인이 가려는 동해 바닷가 외로운 섬까지 그들을 데려갈 수는 없소. 그중에서 우리 전씨(田氏) 족중(族中)과 함께 죽겠다고 따라나서는 몇 명만 데려갈 작정이니, 나머지는 상국께서 거두어 주시오. 오랫동안 과인을 믿고 싸워 온 용사들이오.”

그 말을 듣자 팽월도 알지 못할 강개(慷慨)에 젖었다. 하지만 당장은 전횡의 당부를 기꺼이 들어주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알겠소. 내 중군(中軍)에 거두어 대택(大澤)에서부터 나를 따라온 젊은이들과 다름없이 보살필 것이니 마음 놓으시오.”

하지만 전횡이 제나라의 장졸을 모아놓고 그들의 뜻을 묻자 놀랍게도 모두가 전횡을 따라 동해 바닷가로 가려 했다. 다시는 부모처자에게로 돌아올 수 없는 길임을 내세워 그들을 달랬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에 전횡은 그날 밤 몰래 그들 중 500명만 골라 팽월의 진채를 빠져나갔다. 뒷날의 일이지만, 그렇게 따라간 산동의 지사(志士) 500은 결국 한 사람 남김없이 전횡과 죽음을 같이하게 된다.

팽월은 전횡이 떠난 다음 날로 정병 5만을 모아 한왕이 머물고 있는 진성으로 내려갔다. 한왕이 크게 기뻐하며 팽월을 양왕(梁王)에 가봉(假封)하고 그가 이끌고 온 군사를 한군의 나래로 삼았다. 그때 이미 10만을 넘어서고 있던 한군은 팽월의 대군이 더해지자 한층 기세가 치솟았다. 장수들이 다시 한왕에게로 몰려가 그 기세를 타고 패왕 항우를 뒤쫓자고 우겨댔다. 그래도 한왕은 여전히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도 온힘을 다한다고 한다. 하물며 항우 같은 맹장을 잡으려는 우리이겠느냐? 제왕 한신이 대군을 이끌고 이를 때까지 기다려라.”

그렇게 장수들을 말리며 한신의 대군이 마저 이르기를 기다렸다. 제왕 한신이 가려 뽑은 군사 5만을 이끌고 달려온 것은 팽월이 한왕의 군중으로 든 날로부터 사흘 뒤였다. 한신은 팽월보다 며칠 늦은 대신 곱절의 대군을 이끌고 온 것으로 낯을 세웠다.

“10만 대군을 일으키느라 늦었습니다. 남은 5만은 부장(部將) 공희(孔熙)와 진하(陳賀)가 이끌고 산동에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디든 항우를 잡을 싸움터가 정해지면 늦지 않게 우리 군중에 닿을 것입니다.”

마침내 한신까지 대군을 이끌고 오자 한왕은 비로소 군사를 움직일 채비를 했다. 먼저 한신 팽월 장량 진평 등을 불러 모아 놓고 물었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