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한의 정서를 탱고의 구슬픈 서정과 결합한 한국인 탱고 듀오 ‘오리엔탱고’ 사진 제공 스퀘어피그
서울을 떠나 36시간 동안 비행기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가야 하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오늘도 이 항구도시의 ‘탱고의 거리’에는 옛날 가난한 이민 노동자들의 슬픔과 애환을 담은 탱고의 선율이 흐른다.
한국인 듀오 탱고 아티스트 ‘오리엔탱고(orientango)’의 마음의 고향도 바로 그 곳이다. 2002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귀국공연을 가진 후 4장의 앨범을 내고 활발한 공연을 펼쳤던 오리엔탱고가 다시 아르헨티나로 떠난다. 24∼26일 사흘간 서울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열리는 ‘라스트 탱고 인 서울’은 그들의 고별무대.
“항구도시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바닷가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납니다. 10년간 이민 생활을 하면서 한국의 냄새가 그리웠어요. 2001년 음반 녹음을 위해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아, 이게 내가 그리워하던 바로 그 냄새구나’ 하면서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성경선)
오리엔탱고는 10대에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간 바이올리니스트 성경선(30)과 피아니스트 정진희(30)로 구성된 듀오. 한국인 이민자의 외로운 정서가 그들의 탱고가락에 묻어나서일까. 이들은 동양인 최초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의 공식 탱고 뮤지션으로 선정될 정도로 인정받는 탱고 음악가다.
2000년 7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만자나 데 라스루체스 국립음악홀에서 펼친 데뷔 무대에서 ‘오리엔탱고’는 전설적 탱고 작곡가 아스토로 피아졸라의 부인 등 현지 탱고 뮤지션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피아졸라의 부인은 ‘10년 동안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살면서 이곳의 향기와 느낌을 알아냈기 때문에 당신들의 탱고에서는 진실성이 느껴진다’고 말했어요. 마치 수년간 한국에 살아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부르는 ‘아리랑’을 들으며 눈물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거죠. 탱고도 테크닉보다는 정서적 느낌이 더 중요해요.”(정진희)
이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엄마야 누나야’ ‘고향의 봄’ 같은 한국 노래를 연주하면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눈물을 훔친다고 한다. 한국의 ‘한(恨)’의 정서와 탱고가 통하는 것 같다는 게 ‘오리엔탱고’의 해석이다.
‘탱고의 전도사’를 자처해 온 두 사람은 한국에서 공연장 외에 학교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 병원 등을 찾아다니며 거리 연주회에 적극 나섰다.
“탱고는 자유를 추구하는 음악입니다. 꼭 화려한 무대와 조명 아래서만 연주하는 음악이 아니지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탱고의 거리’에서도 어떤 사람이 반도네온(아코디언과 비슷한 건반악기)을 연주하기에 제가 바이올린을 꺼내서 즉흥적으로 같이 연주한 적이 있었어요. 그날 반도네온 연주자 돈 좀 벌어 줬죠.”(성경선)
소극장에서 사흘간 펼쳐지는 이번 음악회는 클래식 탱고, 모던 밴드와 함께하는 탱고, 일렉트릭 탱고 등 ‘오리엔탱고’의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 주는 무대다. 지난해 12월 발매된 새 앨범에 수록된 창작곡 ‘슬픈 열정’, ‘바이올린을 위한 탱고’는 객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정도로 다이내믹한 곡이다.
정 씨는 “탱고는 보사노바 탱고, 힙합 탱고, 코리안 탱고 등 세계 각국의 음악과 만나 무한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장르”라며 “이번에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탱고적 감성을 재충전한 뒤에는 전 세계를 떠돌며 새로운 음악을 접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6만 원. 02-324-3814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