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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기자의 무비 다이어리]‘왕의 남자’ 연산의 내면

입력 | 2006-02-23 03:06:00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영화 ‘왕의 남자’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왕’의 외로움이었다. 극 속의 왕 연산의 황폐한 내면은 생모의 참극이라는 특별한 체험을 한 사람만의 일탈이라 볼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을 다 가졌으나 아무와도 나눌 수 없는 실존적 외로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왕’의 일거수일투족은 선왕(先王)과 비교되어 중신들에 의해 번번이 간섭받고 제지받기 일쑤였다. 화가 난 왕은 신하들에게 “죽은 자를 위해 일하지 말고 산 자를 위해 일하라”고 소리치지만 아무도 그의 편은 없었다. 겹겹으로 옭아맨 제도와 사람들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던 왕은 밑바닥 인생인 광대들의 자유자재한 말과 행동을 통해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다.

여장 광대 공길은 왕을 가까이 하면서 그의 외로움을 읽었다. 신에 가까운 존귀한 인간인 왕이 다름 아닌, 억울하게 죽은 어머니로 인해 치명적 내상(內傷)을 입은 슬픈 영혼의 소유자이며 사방이 모두 적이어서 기껏 기생이나 끼고 앉아 놀아야 하는 보통 인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는 당혹스럽다. 왕을 향한 그의 사랑은 어느 날 밤, 잠든 왕의 눈자위에 말라붙은 눈물자국을 닦아 주면서 자신 같은 천(賤)것에게 속을 보여 준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왕이란 직업은 이제 없다. 하지만 왕이란 자리는 ‘일인자’라는 점에서 오늘날 다양한 직군에 종사하는 리더와 비슷하다. 리더는 ‘고독한 직업’이라는 점에서 그 옛날 왕들의 내면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리더는 외롭다. 외롭지 않으면 리더가 아니다. 그것은 시공을 초월해 리더가 져야 할 형벌이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친구는 사라지고 적만 늘어나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아첨하는 사람은 많지만 공길처럼 연민하거나 속을 주는 사람은 드물다. 더더구나 현대사회는 위, 아래 모두 파리 목숨인 시대 아닌가. 양다리 걸치기, 세 다리 걸치기를 해서라도 현대의 부하들은 언제라도 ‘배신’을 꿈꾼다. 왕을 아예 사랑해버리면, 공길처럼 불행해진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가 실은 동물 사회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담은 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인류학자 데스몬드 모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불운한 일이지만 진정한 지도자는 아무하고도 진정한 우정을 맺을 수 없다. 진정한 우정은 지위가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표현될 수 있다. 지위의 차이는 우정을 망치게 마련이다. 아무리 선의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색과 아첨이 둘 사이에 끼어들어 관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 있는 지도자는 완전한 의미의 친구를 영원히 가질 수 없다.’

영화 속 연산은 왕의 자리가 타인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싸우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다. 적은 다름 아닌, 자신 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에 정작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들을 차례로 잃어버리는 역설적 비극을 만들었다. 리더를 꿈꾸는 자들이여, 외로움과 맞설 준비가 되어있는가.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