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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을 위한 책 20선]어리숙한 척 남자 부려먹기

입력 | 2006-02-25 02:59:00


《우리 행성에 남자들이 과다해져서 모든 여자가 남자를 셋씩 거느리게 된다고 가정한다면, 여자들은 틀림없이 자기의 세 남자한테서 아이 하나씩을 만들고 그 아이를 위해서 (즉 그녀를 위해서) 일하라고 요구하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녀는 이 세 남자를 경쟁시켜 그들의 성취도를(그것을 통해 자신의 안락을) 무진장 향상시킬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여기 현대의 남녀관계와 결혼제도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완전히 뒤엎는 도발적인 견해가 있다. 요약하자면 ‘남성으로 하여금 여성을 먹여 살리도록 길들인 것은 바로 여성들이며, 여성들은 남성들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평생 집안에서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나약하고 우둔해진다’는 것.

에스테 빌라는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는다. 결혼한 여성들은 ‘어수룩한 척하지만 사실 남자를 조종하고 착취하는 기생충 종족들’이며, 남성들은 ‘스스로 여성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라 믿지만 사실 여성들에게 길들여져 착취당하는 노예들’이고, 남자를 이용하지 않고 스스로 일하는 여성들은 ‘여성 해방의 논리에 빠져 오히려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험난한 팔자를 선택’했다고 비난한다.

저자는 여성이 남성을 굴종시키는 전략은 첫째로 외모를 치장하여 남성의 성욕을 부추기기, 둘째로 젊어서는 아이처럼 어리광이나 부리며 나약한 척하다 나이 들면 아이를 낳아 구실로 삼기, 셋째로 남성을 칭찬하는 동시에 여성 자신이 하는 일은 다 열등한 것이라며 비하하기, 넷째로 공갈치기(종교 교리 등을 통해 남자의 무의식에 선악관과 죄책감 주입), 다섯째로 ‘여성의 술수’라고도 불리는 거짓말하기라고 밝힌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직업을 갖기 전인 어리고 무능한 나이에 경제력 있는 남자와 결혼하여 무능을 영구화하는 여자들이야말로 가장 영리한 부류일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사는 유한마담들의 관점에서는 ‘억울한 여성의 역사’라는 것 자체가 허구이며 평생 시시포스처럼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오히려 남자들이다. 여자들에게는 자립할 것인지, 남자에게 의존할 것인지 둘 중에서 선택할 기회라도 있지만 남성들은 ‘부자유하고픈 욕망’ 때문에 오로지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남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여자인 엄마에게 의존하도록 길들여졌기에 성인이 되어서도 여자에게 기대는 습성을 결코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랑’마저도 ‘여성에게는 상업적 착취를 위한 구실, 남성에게는 노예로서의 생존에 붙이는 감성적인 알리바이’로 본다. 여성의 지성과 권력욕, 명예욕을 무시하는 듯한 이 책의 논리를 선뜻 수용하기는 어렵지만 모든 여성의 가슴 깊이에 숨겨진 ‘유한마담’의 꿈을 부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랑을 믿지 않는 영악한 친구들이 일찍이 유한마담이 되어 호강할 때, 평등한 사랑과 직업적인 성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여성들은 노처녀가 된다. 그런데도 남자들이 여전히 무능한 어린 여자들을 선호하는 걸 보면 저자의 견해가 틀린 건 아닌 모양이다.

어쩌면 이 책의 배후에 남성들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여자들에게 남자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야말로 남자들에게는 ‘지구의 종말’에 버금가는 위기가 될 테니까 말이다.

최재경 작가·프리챌 ‘노처녀통신’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