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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문 직업학교를 가다]일본 조리학교 ‘핫토리’

입력 | 2006-02-25 02:59:00

핫토리영양전문학교 학생들이 4명씩 조를 이뤄 중국요리를 만들고 있다. 음식쓰레기를 없애기 위해 완성된 요리는 학생들이 전부 먹는 것이 이 학교의 원칙이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일본인들은 싸고 맛있는 식사를 즐기기 위해서라면 음식점 앞에 줄을 서서 20∼30분 기다리는 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이름난 ‘맛집’ 앞에는 오전 10시든, 오후 11시든 줄이 늘어서 있다.

요리가 없다면 TV 오락프로그램의 절반 정도는 간판을 내려야 할지 모른다.

이처럼 식도락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갖고 있는 나라인 만큼 요리학교 또한 많다. 전국요리학교협회에 등록된 회원 학교만 460개가 넘는다.

하지만 요리전문가에게 좋은 학교를 추천하라고 하면 대개는 “동쪽(도쿄·東京)에 핫토리(服部), 서쪽(오사카·大阪)에 쓰지(십)”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핫토리영양전문학교(www.hattori.ac.jp)는 도쿄 신도심인 JR신주쿠(新宿)역 남쪽 출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면 이 학교의 모든 교실 앞에서 중고교 시절의 추억 한 자락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복장 및 신체검사다.

조교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손톱을 끝부분까지 바싹 잘랐는지, 매니큐어를 바르지는 않았는지, 머리는 단정하게 자르거나 묶었는지, 구두 하이힐 샌들 등을 신지 않았는지를 점검한다. 위반사항이 있으면 바로잡을 때까지 교실에 들여보내지 않는다.

머리 염색, 수염 기르기, 액세서리 착용도 당연히 금물이다. 이처럼 귀찮은 절차를 줄기차게 계속하는 이유는 위생의 중요성을 학생들의 몸에 배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핫토리영양전문학교가 위생과 더불어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영양이다. 이 학교의 뿌리를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핫토리 유키오(服部幸應) 교장의 집안은 일찍이 일본의 전국시대(대략 1400∼1600년)부터 지체 높은 무사들에게 요리를 공급하면서 이름을 떨쳐왔다고 한다. 전장에 나가는 무사들에게 요리가 비위생적이어서 탈이 난다거나 영양이 부족해서 체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핫토리 교장이 요리인의 길에 이미 들어선 뒤 힘들게 의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이 학교의 조리사 교육과정에 위생과 영양 과목이 유독 많은 것도 이 같은 집안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핫토리의 문패가 ‘영양전문학교’라고는 하지만 이 학교의 중심은 물론 요리다.

학생수를 봐도 영양사과가 150명, 조리하이테크니컬경영학과가 120명, 조리사과가 330명으로 조리 계열이 다수다.

여기에 내국인만이 다닐 수 있는 조리사과 야간, 파티시에·불랑제 전공, 카페·스위츠 전공 과정 등을 합하면 요리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조리하이테크니컬경영학과는 교육내용이 조리사과와 비슷하지만 음식점을 직접 차릴 때에 대비해 경영능력을 키우는 데도 상당한 비중을 할애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컨대 조리사과에는 없는 점포설계, 인사관리, 노무관리, 재고관리, 채산성관리, 자금계획과 같은 과목이 조리하이테크니컬경영학과 2학년 과정에 상당수 포함돼 있다.

조리 관련 학과 졸업생들의 취업 분야를 보면 서양요리점이 32.6%로 가장 많고 이어 일본요리점 15.8%, 제빵제과점 14.7%, 호텔 예식장 여관 12.9%, 중국요리점 9.2%, 영양사 및 조리사양성시설 7.0%, 집단급식시설 2.9% 등의 순이었다. 자신의 가게를 직접 차린 졸업생의 비율은 1.5%가량이다.

한국 유학생들의 취업 현황에 대한 별도 통계는 없지만 한국으로 돌아간 졸업생들은 퓨전요리에 강한 경향이 눈에 띈다고 한다. 학비는 영양사과(2년간)가 251만 엔, 조리하이테크니컬경영학과(2년간)가 289만 엔, 조리사과(1년간)가 154만 엔 정도다.

입주하려면 경쟁을 거쳐야 하지만 기숙사도 있다. 신주쿠 구에 있는 6평 크기의 여성 전용 원룸을 기준으로 처음에 내는 입실비와 보증금이 22만 엔, 매달 내는 기숙사비와 관리비가 6만4000엔이다.

한국어 문의는 국제전화 81-3-3356-7175(전민정 씨).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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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토리’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

핫토리영양전문학교에는 한국인 유학생이 90여 명에 이른다. 대부분 조리 관련 학과 재학생이다.

지난해 4월부터 이 학교 조리하이테크니컬경영학과에 다니고 있는 조영지(趙玲志·30·여) 씨와 장정환(張正煥·26) 씨를 만나 유학을 오게 된 계기와 유학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조 씨는 그래픽 관련 대기업에 다니다가 요리를 배우고 싶어 2004년 7월 회사를 그만뒀다. 실업자 직업훈련과정에 다니면서 3개월 만에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보니 자신이 생겨 요리유학을 결심했다.

처음에는 미국 유학도 생각해 봤지만, 동서양 요리의 장점을 골고루 배우려면 일본이 좋을 것 같아서 우선 일본어 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조 씨는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여러 요리학교에 체험 입학을 해본 뒤 이 학교가 가장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면서 “중도에 회사를 그만두고 요리로 들어선 일, 일본과 핫토리를 선택한 일이 모두 인생의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체험 입학이란 입학지원자들이 학교에 와서 실제로 이뤄지는 것과 똑같은 수업을 받아보는 과정으로, 강사진과 시설의 수준을 직접 체험하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장 씨는 일찌감치 요리에 관심을 가져 고교 재학 중 요리사 자격증을 땄다. 군대를 제대한 뒤에는 한국 음식점 주방에서 2년 동안 근무를 하기도 했다. 그는 “당장은 졸업 후 한국에 일식집을 내는 것이 꿈이지만 길게는 핫토리와 같은 명문 요리학교를 한국에 세우는 데 도전해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