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焚琴煮鶴(분금자학)’이라는 말이 있다. ‘焚’은 ‘불사르다’라는 뜻이고, ‘琴’은 ‘거문고’라는 뜻이며, ‘煮’는 ‘삶다’라는 뜻이고, ‘鶴’은 ‘학’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焚琴煮鶴’은 ‘거문고를 불사르고, 학을 삶다’라는 뜻이 된다. 거문고는 마음의 여유와 평화와 질서를 상징하는 중요한 악기이고, 학은 우아함과 고고함과 長壽(장수)를 의미하는 새이다. 그러므로 예전 사람들은 거문고와 학을 매우 중시했다. ‘焚琴煮鶴’은 이러한 거문고와 학을 불사르고 삶아 버렸다는 것이니, 이 말은 곧 소중한 사물이나 훌륭한 인재를 없애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功臣(공신) 중에 죄를 지은 사람이 있으면 그 형벌을 감해 주든가 면제하여 주었다. 공신이 되면 그만큼 받는 혜택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나라에 공을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오늘날에도 훈장을 받은 사람이 범법을 하면 형벌을 감하여 준다. 이러한 제도를 두는 이유는 나라를 위하여 공로를 세우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법 앞의 평등만을 생각하면, 공신이나 훈장을 탄 사람일지라도 모든 사람과 똑같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나라의 경영은 그렇게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유능한 인재는 간단하게 양성되는 것이 아니다. 몇십 년이 걸려야 유능한 인재 하나가 양성되는 일이 허다하다. 이러한 인재는 함부로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비록 잘못을 범했다고 할지라도 우리 사회가 그들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인재를 아껴야 할 때가 있다. 잘못이 있는 인재를 처벌하여 모든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이, 우리 혹은 이 땅에 살아갈 후손들의 윤택한 생활을 빼앗아 간다면, 처벌과 관용 중에 어느 것이 더욱 애국적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너무나 쉽게 인재를 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진정한 애국자라면 우리가 함부로 ‘焚琴煮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해볼 필요가 있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