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소회 회원들이 21일 이탈리아 아시시의 ‘천사들의 성모마리아 성당’ 앞 벽면에 1986년 세계 종교 지도자들의 모임을 새긴 동판 부조 앞에서 종교 간 화합을 다짐하며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본각 스님, 김효철 교무, 최형일 교무, 이엘리자베스 수녀, 진명 스님, 김지정 교무, 혜성 스님, 곽베아타 수녀, 오카타리나 수녀, 성마리코오르 수녀, 이하정 교무, 선재 스님, 김홍인 교무, 공마리아 수녀, 근하 스님, 정인신 교무. 아시시=윤정국 문화전문기자
《불교의 비구니, 가톨릭과 성공회의 수녀, 원불교의 교무 등 삼소회 회원 16명은 5일부터 23일까지 18박 19일간 세계 각 종교 성지를 순례했다. 여러 종교의 여성수도자들이 한솥밥을 먹고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여행을 통해 서로를 속속들이 알아간 종교 사상 획기적인 실험을 한 것이다. 이들 스스로는 이번 순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귀국 직전인 21일 밤 이탈리아 로마의 한 수도원 숙소에서 이들이 연 자체 평가회의를 요약해 소개한다.》
▽이하정 교무=동양의 종교인으로서 그동안 서양에 대해 막연한 우월감을 갖고 있었는데 막상 유럽의 아름다운 성당 건축물과 잘 보존된 성지들을 보면서 찬탄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됐다. 많은 반성을 하게 됐다.
▽성마리코오르 수녀=내가 믿는 종교 밖에도 하느님이 계시는 것을 알게 됐다. 어디에서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다면 타 종교인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인신 교무=순례는 그리움이라 생각한다. 내가 가보고 싶었던 곳, 내가 깨어날 것 같은 곳을 찾아가는 것이 순례였다. 순례 후 내 마음은 훨씬 더 풍요로워지고 맑아졌다.
▽혜성 스님=나는 개신교 신자였다가 대학 4학년 때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출가했다. 어릴 때부터 기원했던 예루살렘 성지를 불교의 수도자로 방문하게 돼 감회가 새로웠다. 예루살렘 성지 순례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서 당한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인도 불교성지에서는 내 안의 무거운 마음을 버릴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김홍인 교무=대종사님, 부처님, 예수님 말씀의 뜻이 결국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가난을 실천하는 삶에 주력하고 싶다.
▽공마리아 수녀=성지 순례의 여정은 자신을 회개하는 것이었다. 이번 순례 길에 나서기 전에 다른 종교인의 흉내를 내지 않고 그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래서인지 부처님 앞에서 기도를 해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다. 예수님이 사형 선고를 받았던 예루살렘의 빌라도 재판정 건물에서 예수님 석상을 봤을 때 너무나 마음이 절절해 통곡이 나오더라. 인도 불교성지에서 부처님이 처음 깨달음을 얻었다는 마하보디 대탑을 돌 때 스님들의 심정이 이와 비슷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하 스님=수행자는 자신에게 채찍질을 가하고 남에게는 너그럽고 따뜻한 미소를 지을 줄 알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이엘리자베스 수녀=타 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좋았다. 서로 이해하려 노력하고 잘못이 있으면 자신의 탓으로 돌리려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다. 앞으로는 삼소회의 틀을 뛰어넘어 우리가 이해하고 느낀 것을 신자들에게도 전했으면 좋겠다.
▽김효철 교무=예루살렘의 장벽이 높게 쳐진 것을 보고 성자들의 가르침은 이게 아닐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우리 모두 종교의 교리보다는 가르침의 본연으로 돌아가 삶 속에서 이를 실천해야겠다. 자신의 소임이 있는 곳이 성지이고, 거기서 수행하는 것이 곧 순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재 스님=수녀님이 되길 원했다가 스님이 됐다. 삼소회에서 종교 간 화합의 희망도 보고 실망도 맛봤다. 나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우물 안에서 벗어나 큰 바다로 나아가는 순례의 길이 됐으면 한다.
▽최형일 교무=부족한 점도 있지만 우리가 못자리판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종교인 간의 화합의 못자리, 세계 평화의 못자리를 만들었다고 본다.
▽곽베아타 수녀=작은 갈등이 있다면 우리의 믿음으로 해결하면 된다. 우리가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내려 하지 말고 조금씩 계속해 나가는 게 좋겠다.
▽김지정 교무=이번 순례가 종교 화합을 꿈꾸는 사람들의 실험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는 하루 7000번 파도가 쳐 정화된다. 삼소회가 종교 간의 울을 녹이는 역할을 해 나갔으면 좋겠다. 이번 순례는 그 첫걸음이다.
▽본각 스님=기독교와 불교가 너무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앞으로 우리 불교문화를 가꾸고 보존하는 일에 주력하고 싶다.
▽진명 스님=순례하면서 서로 타 종교를 너무 모른다는 점도 깨달았다. 서울로 돌아가 서로의 경전을 공부하고 온라인상에서라도 자주 만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넓혀 나가자. 여러분과 함께한 성지 순례는 행복했다.
로마=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