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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황호택]‘이해찬 골프’

입력 | 2006-03-03 03:06:00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말 중에 ‘술과 골프의 공통점’이란 게 있다. 혼자 하면 재미없다. 쉽게 정복되지 않는다. 자주 하면 는다. 동반자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다. 끝날 때가 되면 아쉬워 더 하고 싶다. ‘굿 샷’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다시 안 하겠다고 하고선 또 한다. 적당히 하면 몸에 좋지만 너무 많이 하면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지나치면 가정과 직장에서 문제가 생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술이든 골프든 ‘중독’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조순 서울시장 밑에서 정무부시장으로 일한 적이 있다. 국회의원일 때는 골프장 예약 좀 해달라고 청탁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서울시 부시장으로 있을 때는 부킹 청탁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그는 부킹 청탁을 들어주면서 “골프가 그렇게 좋은가 보죠”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 총리가 골프에 빠져 든 시점은 정치 행로와 관련이 있다. 4선 의원에 교육부 장관까지 지냈지만 대선 예비후보군에는 들지 못했다. 이 총리는 이 무렵 골프에 침잠했던 것 같다.

▷그는 총리가 되면서 말도 더 거칠어졌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이 총리만큼 골프 구설수에 많이 오른 역대 총리는 없다. 지난해 4월 낙산사를 다 태운 대형 산불이 났을 때도 그는 골프를 쳤다. 국회에서 “이런 일이 없도록 근신하겠다”고 했지만 돌아서면 그만이었다. 그해 7월에는 전국에서 물난리가 났는데도 제주도로 가 라운드를 했다. 한 사업가가 만든 ‘이 총리 중동 순방 기념’ 봉황 무늬 골프공도 탄생했다.

▷이 총리는 브로커 윤상림 씨와도 몇 차례 라운드를 했다. 윤 씨와의 관계 때문에 국회에서 홍준표 의원과 설전(舌戰)을 벌인 다음 날 이 총리는 부산에서 골프를 쳤다. 제87주년 3·1절에 철도공사 노조의 파업이 시작된 날이다. 1년 남짓 교육부 장관을 하고 나서 ‘이해찬 세대’라는 말이 생겼는데 총리를 마치면 ‘이해찬 골프’라는 말도 나올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골프, 아무도 못 말리는 골프 말이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