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동성애를 다룬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사진 제공 백두대간
영화 ‘왕의 남자’는 동성애 영화일까? 동성애자들은 이 영화를 좋아할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흥미로운 자리가 마련됐다.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 내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강의실에서는 남성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가 주최하는 ‘극장가를 장악한 퀴어 웨이브’라는 제목의 좌담회가 열렸다. ‘퀴어(queer)’란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영어 표현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6명의 토론자는 최근 잇따라 개봉된 ‘왕의 남자’ ‘메종 드 히미코’ ‘타임 투 리브’ ‘브로크백 마운틴’ 등 남성 간 동성애를 담은 영화들을 두고 격의 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행사는 언론의 사진 촬영이 금지됐다.
“‘왕의 남자’의 그 ‘남자’가 게이(남성 동성애자)인지, 그 비슷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진행자로 나선 이민철 친구사이 회원이 이렇게 웃으면서 운을 뗐다.
그러자 말을 이어받은 박진형 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왕의 남자’의 흥행 이유에 대해 “그간 동성애 영화들이 게이나 동성애라는 이슈를 전면으로 끌고 나왔던 것에 반해 ‘왕의 남자’는 정치적 풍자와 왕 연산이라는 역사적 인물, 사극이란 형식, 남사당패의 놀이와 같은 대중적 흡인력을 가진 장치들 속에 동성애를 녹여 넣음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왕의 남자’를 통해 ‘동성애자=예쁜 남자’라는 등식으로 진실이 왜곡될까봐 우려하는 동성애자가 많다”면서 “예쁜 남자로 동성애자들을 미화해서인지 게이들은 예쁜 남자들을 많이 싫어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종헌 친구사이 대표는 “이런 영화를 보면서 ‘나같이 예쁜 게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겠구나’란 생각을 했다”고 농담을 던지면서 “‘왕의 남자’보다는 ‘브로크백 마운틴’이 더 끌렸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예외적으로 아랫도리가 묵직해지는 걸 느꼈다”는 대담한 발언도 했다. 이날 토론자 중 유일한 여성인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는 “게이 영화에 대한 반응을 저(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에게 물으시다니…”하고 웃으면서 “‘왕의 남자’에 게이보다 레즈비언들이 더 열광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왕의 남자’ 속 장생, 공길, 연산은 모두 상대를 사랑하는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할 얘기를 제대로 못한 채 스스로 억누르는 이들의 처지는 평소 사회에다 일언반구도 할 수 없는 레즈비언들의 억눌린 처지와 일치합니다.”
2시간 가까이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문화사회연구소에서 운동가로 활동하는 최승우 씨의 유쾌한 한마디와 함께 끝이 났다.
“저도 놀랄 때가 많지만, 게이 분들의 가장 큰 장점은 그 굴하지 않는 유쾌함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