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경제학 블로그/원용찬 지음/357쪽·1만2000원·당대
어느 날 한 수학자가 시인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선배 수학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잘됐군. 그 친구는 수학자로 성공하기에는 상상력이 너무 부족했거든.”
이 같은 말을 경제학자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경제학자에게서 상상력이란 단어를 연상하기는 쉽지 않다. 경제학은 우리 일상의 가장 구체적 사안인 돈 문제에 발을 담근 채 매우 추상적 이론의 세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 존 내시가 금발 미녀를 어떻게 유혹할까 하는 소재를 놓고 술집에서 토론을 벌이다 ‘내시의 균형’이라는 게임 이론을 끌어내는 장면은 그런 경제학자의 이미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자신만의 정신세계에 갇혀 외부와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던 경제학자 내시는, 극단적 형태이지만 일반인이 경제학자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원용찬 전북대 경제학부 교수가 2000년부터 전라도닷컴에 연재하던 글들을 발췌 정리한 이 책은 경제학의 그런 자폐적 분위기를 박차고 나선다.
그는 거의 자연법칙 수준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제학의 법칙 너머에 존재하는 다른 현실들을 시장 좌판에 앉아 구수한 목소리로 설명한다.
커피 자판기에 동전이 들어 있을 때 ‘공짜 커피’가 생겼다고 좋아하면서도 다음 사람이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다시 동전을 넣어 두는 사람, 시장에서 자신의 상품을 재빨리 팔아 치우는 것보다는 그 하나하나를 팔면서 느끼는 여유를 행복으로 여기는 인디언들,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하루 300그릇 이내에서만 콩나물국밥을 팔던 전주 ‘삼백집’의 고집….
저자는 경제학적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호모에코노미쿠스’에 대별되는 이러한 사람들을 ‘호모리시프로칸’(호혜적 인간)이라고 말한다.
호모에코노미쿠스가 모든 것을 상품 교환의 시장의 논리로 환원하는 과똑똑이들이라면 호모리시프로칸은 상품 교환의 논리로는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그러나 인간의 본연에 더 가까운 바보들이다. 호모리시프로칸은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남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개인적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이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게임이론과 한계효용이론, 화폐론 같은 경제학의 이론뿐 아니라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이론을 끊임없이 기웃거린다. 르네 지라르의 모방욕망론, 장보드리야르의 기호소비론, 페르낭 브로델의 역사 3층론, 브누아 만델브로의 프랙털이론, 퍼지이론….
이처럼 수다스러운 경제학자가 다 있다니 하고 놀라다가도 앨프리드 마셜이 말한 ‘차가운 두뇌와 따뜻한 심장을 지닌 경제학자’를 만났다는 반가움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