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14일, 한국과 포르투갈의 한일(韓日) 월드컵 조별리그 D조 마지막 경기. 후반 25분 이영표가 포르투갈 진영 왼쪽에서 골문 앞으로 매끈하게 크로스를 감아올렸다. 골 지역 오른쪽에 있던 박지성이 가슴으로 공을 받고 오른발로 툭 차올려 수비수를 제친 뒤 강력한 왼발 슛으로 골네트를 갈랐다. 한국의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환상적인 골이었다. 그때 박지성은 21세의 ‘루키’(신출내기)였다.
4년이 지난 지금 박지성은 루키가 아니다. 세계적 명문(名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수이자 한국축구의 색깔을 바꿔 놓는 ‘키(Key) 플레이어’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박지성을 공격형 미드필더와 측면공격수 중 어느 자리에 써야 할지 고민하겠지만 사흘 전 앙골라와의 경기 때처럼 상황에 따라 위치를 바꿔 가며 그의 능력을 활용할 것이다.
요즘처럼 이천수가 오른쪽에서 펄펄 날면 박지성은 중앙에서 공격을 지휘하면 된다. 하지만 박지성은 측면에서 좀 더 위력적이다. 따라서 감독으로서는 그를 오른쪽 공격수로 쓰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1999년 1월 어느 날 울산 서부구장. 당시 축구 국가대표와 청소년대표 감독을 함께 맡고 있던 허정무 현 전남 드래곤즈 감독은 울산 현대와 연습경기를 하던 명지대의 한 어린 선수를 눈여겨보았다. 체격은 별로였지만 지능과 센스가 뛰어나 보였다. 허 감독은 명지대 김희태 감독에게 한 일주일 데려다 써 보고 싶다고 했고, 김 감독은 그러라고 했다.
이듬해 박지성은 올림픽대표선수가 됐다. ‘흙 속의 진주’는 이렇게 발굴됐고, 그 후 거스 히딩크라는 명장(名將) 아래서 ‘아시아의 별’로 조련됐다.
흥미로운 것은 ‘초롱이’ 이영표(토트넘 홋스퍼)도 허 감독이 발굴했다는 사실이다. 건국대에서 뛰던 이영표는 허 감독이 1999년 국가대표로 뽑기 전에는 청소년대표에도 들지 못한 무명 선수였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한일 월드컵 이후 스승인 히딩크 감독의 PSV 에인트호번에서 한솥밥을 먹고, 나란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것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신기하지 않은가.
박주영은 올해 박지성의 4년 전 나이인 21세다. 아시아청소년대회를 휩쓴 ‘축구 천재’라지만 아직은 루키다. 전문가들은 박주영이 천부적인 골 감각과 유연한 드리블, 물 흐르는 듯한 패스 등 3박자를 갖춘 ‘한국축구의 미래’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아직 베스트는 아니다. 대표팀에서 주로 왼쪽 공격수를 맡지만 그 자리에는 설기현이 있다. 빠른 돌파력을 앞세운 정경호의 기세도 높다. 가운데에는 이동국과 안정환이 버티고 있다.
따라서 박주영이 독일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을지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말처럼 남은 기간 그가 무엇을 보여 주느냐에 달렸다.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박주영이 ‘살아남기’를 바란다. 2002년 루키였던 박지성이 오늘의 ‘베테랑’이 됐듯이 4년 뒤 박주영이 ‘한국축구의 골잡이’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기본 전술은 ‘4-3-3 시스템’이다. 수비수 4명이 일(一)자로 서고 미드필더 3명이 공수(攻守)의 중심이 되는 전법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특히 공격적이다. 그는 경기 중 종종 휘파람을 불어 수비수들을 위로 끌어올린다. 미드필더와의 간격을 좁혀 압박하라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수비 뒷공간이 열리고 상대의 침투 패스 한 방에 골을 먹을 위험성이 높다. 더구나 한국축구는 그동안 주로 세 명의 중앙수비수가 대인(對人) 방어를 해 왔다. 지역을 나눠 맡는 포백(four back) 시스템에는 아직 익숙하지 못하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그 보완책으로 내놓은 것이 더블 볼란치(double volante)다. ‘볼란치’는 포르투갈어로 배의 키나 자동차 운전대를 뜻한다. 즉 수비형 미드필더 두 명이 운전대 돌아가듯 번갈아 공수에 가담하는 것이다. 결국 김남일과 이을용(또는 이호)에서 꼭짓점인 박지성으로 이어지는 삼각편대의 움직임에 독일 월드컵의 성적이 달려 있는 셈이다.
아무튼 박지성과 박주영, 두 박(朴)의 얘기를 할 때가 가장 마음 편하고 즐거운 게 요즘 세상이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