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네바다 커뮤니티 칼리지(CCSN) 카지노 경영학과의 룰렛게임 수업 시간. 이번 학기 룰렛 수업은 3개 반이 개설돼 있다. 라스베이거스=정미경 기자
카지노 & 딜러의 히든카드는? 서비스 정신!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의 한 편의점.
손님의 발걸음은 십중팔구 슬롯머신으로 향한다. 가게 한쪽에 줄지어 놓인 슬롯머신은 가장 붐비는 코너이다. 슬롯머신 행렬은 공항도 마찬가지이다. 라스베이거스는 관광객의 주머니를 몽땅 비워 놓게 만들겠다는 치열한 상혼으로 무장된 도시이다.
라스베이거스는 15%의 도박세를 부과한다. 이 덕분에 대다수 미국 대도시가 예산 부족으로 고민하고 있지만 이곳은 돈이 넘쳐난다. 시저스 팰리스, 미라주 등 유명 호텔 카지노가 몰려 있는 ‘스트립(Strip)’ 거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여기저기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2년제 전문대학인 ‘남부 네바다 커뮤니티 칼리지(CCSN)’는 ‘부자’ 대학이다. 네바다 주 당국으로부터 풍부한 예산을 지원받는다. 소규모로 운영되는 대다수 커뮤니티 칼리지와 달리 다양한 커리큘럼과 최첨단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중에서도 카지노 경영(Casino Management)은 이 학교가 집중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재학생이 700여 명에 이르는 대형 학과다. 도박 산업이 도시의 주 수입원인 만큼 카지노 교육에 쏟는 관심도 남다르다.
카지노경영학과는 ‘서티피키트(Certificate)’라고 불리는 1년 과정과 ‘어소시에이트(Associate)’로 통하는 2년 과정으로 나뉜다. 수업 내용은 카지노 관련 과목이 절반, 일반 경영과목이 절반 정도이다.
게임 실기 과목은 세분화되어 있다. 올 봄학기 포커 과목은 9개 반(班)이나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블랙잭과 크랩스(주사위 던지기 게임) 수업 수강률이 높았지만 유명 포커 플레이어들의 게임이 TV로 중계되면서부터 포커가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게임 과목은 경력 5년 이상의 현직 딜러가 가르친다.
기자가 참석한 카지노 감시(Casino Surveillance) 수업은 실제 카지노처럼 꾸며진 랩(연구실)에서 진행됐다. 랩에는 포커, 블랙잭, 룰렛, 바카라 등 다양한 게임용 테이블과 카드, 칩, 휠, 슬롯머신 등이 갖춰져 있었다. 대형 카지노에서 쓰는 KEM사의 플라스틱 카드, 11.5g짜리 칩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절반 정도의 학생은 딜러와 고객으로 나뉘어 게임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별도의 방에서 소형 모니터를 통해 플로어 진행 상황을 면밀히 관찰한다. 수상한 행동을 하는 고객은 물론 딜러가 게임 룰을 정확히 따르는지도 감시 대상이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딜러가 셔플링(카드 섞기)은 철저히 하는지, 카드를 던져야 할 때 그냥 바닥에 놓지는 않는지 살펴보라”고 지시한다. 부정행위가 끼어들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CCSN 카지노 경영 프로그램의 목표는 카지노 매니저와 중간관리자를 육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 내용은 단순한 딜러 교육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딜러가 되려면 스트립 주변에 있는 수십 개의 사설 학원에서 단기 과정(1∼2개월)으로 게임을 배우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설 학원은 수강료가 비싸고 신뢰도에 문제가 있는 곳이 많아 주의해야 한다.
현재 CCSN 카지노 경영 프로그램에 다니는 한국 학생은 7, 8명 정도. 스콧 나우스 CCSN 국제사무처 이사는 “대다수 한국 학생은 ‘어소시에이트’ 과정을 마친 후 네바다주립대(UNLV)로 편입해 정규 학사 학위를 딴다”고 설명했다.
CCSN에서 필수과목을 모두 수강하면 별도 시험 없이 UNLV 카지노경영학과 3학년으로 편입할 수 있다. CCSN의 학기당 수업료는 3500달러(약 338만 원) 정도. UNLV로 가면 학비는 두 배 이상 높다.
카지노 업무는 고객과 접촉하는 서비스업인 만큼 실무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CCSN 과정을 이수한 학생은 1년 동안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일하면서 ‘실무 트레이닝(OPT)’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물론 해당 카지노의 선발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스트립에 있는 유명 카지노에서 실무교육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스트립 카지노는 경력 5년 이상의 베테랑 딜러만 고용한다.
올봄 CCSN 과정을 끝낸 한국인 김은수(26) 씨는 “지역주민 고객을 상대로 한 로컬 카지노나 1970, 80년대 번성했던 다운타운 지역 카지노에서 실무를 익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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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난데즈 CCSN 학과장 “신입생 70%가 카지노 구경조차 못해본 사람들”
데이비드 헤르난데즈(사진) CCSN 카지노경영학과장 사무실에 들어서면 한쪽 벽에 큼지막한 상패가 걸려 있는 게 눈에 띈다.
전 세계 호텔과 요식업 교육전문가로 구성된 비영리단체, ‘서비스교육 평가위원회(CAHM)’로부터 최우수 평점을 받은 상패이다. 미국 대학 중 카지노경영 분야에서 최고 평점을 받은 곳은 CCSN이 유일하다.
프로그램의 지명도가 높다 보니 카지노 실무 경험이 많은 지원자들로 넘쳐 날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헤르난데즈 학과장은 “입학생의 70%는 카지노 문턱에도 가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직업을 바꾸기 위해 입학한 학생이 대부분으로 평균 연령은 30대 초중반.
그는 카지노 경영의 키워드는 ‘오락’이라고 강조했다. 카지노 문화가 발달하다 보면 승부보다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는 고객이 늘어난다는 것.
“고객이 1분 더 머무른다고 가정했을 때 카지노 수입은 연 500만 달러가 늘어납니다. 단순히 기술만 좋은 딜러보다는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할 줄 아는 딜러의 테이블이 붐비는 법이죠.”
카지노 체인 ‘하라스 엔터테인먼트 그룹’은 딜러들에게 ‘3m 규칙’과 ‘2m 규칙’을 교육하고 있다. 테이블에서 반경 3m 이내에 접근한 고객에게는 반드시 눈인사를 보내고, 2m 이내에 들어온 고객에게는 대화를 건네야 한다는 황금 규칙이다.
따라서 교과서에는 없지만 사교능력을 개발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키우는 것이 교육과정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다양한 상황을 설정하고 이에 대응하는 방법을 토론하는 수업이 인기가 높다.
비자 문제 때문에 한국을 비롯한 외국인 유학생들은 졸업 후 미국 카지노에 정식으로 취업하기가 어렵다. 대신 실무 트레이닝 과목을 적극 활용하라는 게 헤르난데즈 학과장의 충고다.
그는 “한국인 유학생들은 졸업 후 강원랜드나 외국인 전용 카지노로 진로를 정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