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열정은 처음부터 서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게 하거나 그 사람에 대해 진정으로 공감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것은 차라리 우리 자신 속으로 가장 깊숙이 파고들어 가는 것이며, 천 번, 만 번 접힌 외로움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 자신의 외로움으로 하여금 만물을 포용하는 세계로 뻗어 나가 나래를 펴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치 천 개의 빛나는 거울에 둘러싸인 듯이.―본문 중에서》
세상이 온통 장밋빛으로 보이는 연인들에게 무슨 말이 필요하랴. 사랑에 관한 한 그들은 이미 최고의 시인, 작가, 배우이다. 그러니 당분간 그렇게 더 사랑하라,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은 없으니, 사랑보다 더 생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은 없으니, 가능한 한 오래 그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지 마라고 마술이라도 걸어 주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꿈은 얼마나 허망한가. 깨어나지 않는 것은 꿈이 아니다, 죽음이다. 그리하여 사랑은 얼마나 잔인한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마는 꿈속에 공중누각을 지으니 말이다. 사방을 돌아보면 현기증, 독버섯처럼 퍼지는 혼란뿐이니 말이다. 그러니 어디에서든 사랑하라, 미친 듯이 사랑하라고 언제까지나 외칠 수만은 없는 법. 잠시, 지나가는 바람이라도 붙잡고 물어봐야 하는 것이다. 당신, 연인들의 최종 목적지는 결혼인가 하고.
동거, 핵가족, 싱글맘, 1인 가족 등 현대는 삶의 다양한 형태만큼이나 다양한 사랑법이 공존한다. 동시대의 같은 하늘 아래 숨쉬고 있지만 우리는 낭만적인 사랑과 현대적인 사랑, 포스트 모던한 사랑이 동시에 뒤섞인 비동시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연인들의 최종 목적지가 더는 결혼이 아닌 경우가 흔해졌다. 결혼이냐 아니냐. 사랑을 위하여 또는 사랑 때문에 함께 살 것이냐, 따로 살 것이냐. 이 문제를 두고 목하 고민 중인 연인들 또는 커플들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책이 ‘사랑은 지독한 혼란: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이다.
이 책은 ‘위험사회’로 유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 부부가 공동 집필한 사랑 보고서다. 개인에서 출발해 부부로서 각자가 겪은 사랑의 혼란을 글쓰기로 시도한 것이다. 두 개인이 만나 하나의 결혼 형태를 이루듯 이 책은 두 버전, 두 책이 사랑이라는 하나의 대상으로 결합된 형태이다. 사랑을 테마로 한 두 사람의 사회학적 대화인데, 이러한 듀엣 저작의 장점은 무엇보다 균형 감각이다. 울리히 벡은 거시적인 입장에서 현대의 위험 요소로 떠오른 사랑을 고찰하고, 부인 엘리자베트는 개인의 관계에서 출발해 결혼, 아이 문제의 속살을 파헤치는 미시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들은 서로의 견해차를 어떻게든 꿰맞추려 하지 않고 그 차이를 그대로 보여 주며, 때로 중복적인 내용과 얼핏 모순적인 논리도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이들의 글은 사랑, 또는 결혼에 대한 새로운 사회학적 용어와 수치가 제시되지만 딱딱한 사회학 보고서로 읽히지 않는 특별한 매력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부부의 오랜 대화와 사유를 통한 탁월한 글쓰기에서 기인한다.
사랑을 위해 함께 살 것이냐, 따로 살 것이냐, 함께 산다면 어떻게 살 것이냐를 목하 고민 중에 있다고 해도, 사랑은 여전히 우리의 사생활을 지배하는 신(神)이다. 지독한 혼란 끝에 쟁취하는 사랑에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함정임 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