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퇴임한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은 노무현 정부의 각료로서는 드물게 소신과 원칙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전투적 노동운동 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노사(勞使)가 다 망한다”며 노동계의 불법과 억지에 법과 원칙으로 맞섰다. 위기를 느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퇴진 압력을 넣었고, 정권 측에서도 눈치를 주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김 전 장관은 학계에 있을 때 진보적 경제학자로 분류됐다. 2004년 2월 그가 장관으로 발탁되자 노동계는 ‘진보’를 자기네 코드라고 해석해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진보=친노(親勞)’ 등식을 부정했다. 그는 “노동계에 동조하지 않으면 자신이 진보적으로 비치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지식인들이 있는데 그 같은 ‘감상적 진보주의’는 곤란하다”고 했다. 퇴임사에서 그는 “올해는 노조가 전투적인 복장과 행동을 바꿔 성의 있게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깽판 칠 준비를 해 온 민주노총’에는 김 전 장관의 진정(眞情)이 통하지 않았다. 지난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16개월을 끌어 온 비정규직 관련 3개 법안을 처리하자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과 함께 결사반대 투쟁에 나서 결국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 상정을 무산시켰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기업이 근로자의 질병이나 출산 등 부득이한 경우에만 계약직(기간제 근로자)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유(事由) 제한’을 두지 않아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회 환노위를 통과한 비정규직 법안의 골자는 계약직으로 2년 넘게 근무하면 사실상 정규직이 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축소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이에 대해서도 반론을 편다. 기업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부담을 느껴 ‘2년 내 해고’를 반복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비정규직 법안은 종전에 없던 ‘차별금지’를 명문화했다. 지금은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의 63% 정도지만 이 법이 시행되면 80%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2년마다 ‘숙련된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미숙련 비정규직’을 다시 고용하는 쪽이 더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경제계에서는 채용과 해고를 모두 어렵게 만드는 ‘반(反)기업 법안’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신임 민주노총 위원장은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되면 총파업을 통해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4월 임시국회 처리도 막겠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비정규직 보호를 입에 담고 있지만 사실은 계약직을 밀어내 정규직의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들의 주장대로 ‘부득이한 경우’로 계약직을 제한하면 550만 비정규직은 직장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일자리 자체가 없어질 판인데 보호 법안이 무슨 소용인가.
김 전 장관은 재임 중 “노조가 명분 없이 들이받다가는 머리만 깨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철도공사 노조의 파업이 그런 식으로 끝났다. 조합원들이 노조 지도부에 속았다고 들고일어났고, 시민들은 ‘노조의 파업병’을 고쳐야 한다며 불편을 참았다. 그러자 노조가 백기를 들었다. 현장을 외면하고 조직 내 권력투쟁이나 일삼는 민주노총의 앞날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