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쪽 귀고리도 달도록 해라.”
“하지만… 다른 쪽 귀는 뚫지 않은 걸요.”
“그럼 뚫도록 해야지.”
손을 뻗어 귀고리를 잡았다. 그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정향유와 바늘을 가져와 다른 쪽 귀를 마저 뚫었다. 나는 울지도, 기절하지도,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그는 보이는 쪽의 귀고리를 그려 넣었다. 그가 볼 수 없는 다른 쪽 귀에서는 불로 지지는 듯한 아픔이 몰려왔다.―본문 중에서》
한 시나리오 작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자는 한번도 갖지 못한 여자를 평생 잊지 못하고, 여자는 한번 가진 남자를 평생 잊지 못한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땐, 속물근성의 남성상과 전근대적인 여성상에서 기인한 한낱 가설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과연 이 세상에 평생을 아쉬움으로 사는 남자가 몇 있으며, 추억으로 사는 여자는 몇 명이나 되겠는가. 남자건 여자건 영원하지 못한 사랑 앞에서 슬퍼지는 건 당연지사인데 말이다. 그런데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는 그 작가의 말을 다시 귓전에 맴돌게 만든다. 미리 결론짓자면 이 소설은 남자라서, 혹은 여자라서 미완의 사랑이 제각기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소설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절대 잊혀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소회(素懷)이자 찬가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요를 화폭에 담아 냈던 거장 얀 페르메이르(베르메르)와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페르메이르의 하녀가 된 소녀 그리트의 사랑이 부드럽고 유연한 붓 터치로 캔버스 위에 펼쳐진다.
‘주인’과 ‘하녀’가 ‘남자’와 ‘여자’가 된다는 건 통속적이지만 한편으론 치명적이다. 작가 슈발리에는 자칫 헛디딜 수 있는 이 미묘한 줄타기에 성공한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그리트가 알아서 행한 페르메이르의 화실 청소는 매우 영민했고, 그의 눈에 띄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그리트에게 잠재돼 있던, 회화에 대한 남다른 감식안은 페르메이르에게 그리트를 하녀가 아닌 여자의 존재로 인식하게끔 만든다. 가정을 가진 배고픈 예술가에게 여자가 생겼다면 그의 부인, 장모, 후원자의 시선은 곱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페르메이르와 그리트는 결국 감당할 수 없는 결말을 향해 아슬아슬하게 다가간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라는 별칭을 가진 신비로운 그림 ‘진주 귀고리 소녀’의 완성을 위해…. 그리고 단 하나뿐인 그들만의 사랑을 위해….
‘화가’와 ‘모델’이라면 모르겠지만 ‘남자’와 ‘여자’는 확실히 다르다. 페르메이르가 그리트에게 단지 묘한 시선과 그림에 대한 몇 가지 질문만을 던진 남자라면, 그리트는 오직 한사람 페르메이르만이 자신을 인정해 주길 고대한 여자였다. 페르메이르는 자신의 부인이 소중히 여기는 진주 귀고리를 그림의 모델이 된 그리트에게 권한다. 그리트는 그 진주 귀고리가 페르메이르에게는 다른 여자의 흔적임을 알면서도 기꺼이 귀에 건다. 이렇게 ‘진주 귀고리 소녀’는 성숙한 아픔을 감수하며 완성되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결국 어긋나고 말았다. 마치 햇빛과 그림자처럼 만났던 페르메이르와 그리트지만, 페르메이르는 그리트를 한번도 갖지 못했고, 그리트는 마음속으로나마 페르메이르를 품을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잊지 못할 것이다. 페르메이르의 유품 중 유일하게 진주 귀고리만이 그리트에게 남겨진 걸 보면, 그들의 관계는 순간의 인연은 아닐지언정 불멸의 인연이었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유진우 케이엠컬쳐 영화 기획팀장